달러는 해외로, 고물가는 국내로… 고환율의 역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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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해외로, 고물가는 국내로… 고환율의 역설이 시작됐다

뉴스락 2025-11-21 23:42: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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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락] 지난 13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 돌파 우려를 불러일으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시장은 여전히 1470원대 고환율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9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에도 원화 강세로 연결되지 않는 이례적인 흐름은 기존의 상식적 논리가 더 이상 한국 외환시장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국내 기업들의 달러 환전 회피와 해외 재투자 확대, 즉 구조적 ‘탈(脫)한국 자금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시중은행 영업점 환율표. 사진 = 정수연 기자 [뉴스락]
시중은행 영업점 환율표. 사진 = 정수연 기자 [뉴스락]

 

수출 흑자에도 환율이 안 내려가는 이유

과거 환율의 기본 공식은 단순했다. 수출이 잘되면 달러가 국내에 들어오고, 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면 원화는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공식이 완전히 무너졌다.

우리은행 ‘2026 외환시장 전망’ 보고서는 한국이 9개월 연속 무역흑자를 기록했음에도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상황을 “실물 경기와 외환시장의 탈동조화(디커플링) 심화”로 규정했다.

가장 큰 원인은 달러의 국내 유입이 막힌 구조적 수급 단절이다.

수출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과거처럼 국내로 송금해 원화로 교환하지 않고, 해외 법인의 설비 투자·지분 확대 등에 직접 투입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국내 외환시장에 풀리는 달러가 줄어들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미국·유럽으로 옮기면서 달러 유입보다 달러 유출이 더 커지는 ‘역전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오하이오·테네시 등 배터리 공장에 수조 원을 투입하며 현지 법인 수익을 그대로 재사용하고 있다.

SK온 역시 미국 포드와의 합작 공장에 11조 원 이상 투자하며 달러 환전보다 현지 증설을 우선하고 있다.

삼성SDI도 GM과의 합작 공장 신설에 약 4조 원을 배정하며 해외 수익금을 직접 투입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조지아 전기차 공장(7조 원 규모)에 북미 판매 수익을 재투자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는 2차전지·반도체·자동차 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직접투자가 최근 3년 급격히 증가한 흐름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IRA(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 이후 배터리 3사와 완성차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합작 공장과 생산라인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국내로 들어올 달러는 사실상 해외로 직행하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 생산 비중을 높이면서 국내 외환시장에 풀리는 달러는 감소하고 있다.

수출이 늘어도 달러 유입이 증가하지 않는 구조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수출 호조 → 원화 강세’라는 기존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학개미’의 해외투자를 언급하지만, 시장을 흔드는 핵심 변수는 개인이 아닌 기업의 대규모 해외 직접투자(FDI)다.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 외환시장이 구조적으로 ‘달러 유출 우위’로 재편된 신(新) 국면”이라고 해석한다.

과거처럼 원·달러 환율이 자연스럽게 1200~1300원대로 복귀하는 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고환율 장기화...국민 생활비 부담 '껑충'

“뉴스에서는 유가가 떨어졌다는데 주유소 가격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며 “환율이 생활비를 직접 갉아먹는 줄은 몰랐다.”

서울 영등포구 한 주유소에서 만난 50대 시민은 이같이 토로했다.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주유소 21일 가격. 사진 = 정수연 기자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주유소 21일 가격. 사진 = 정수연 기자

고환율의 충격은 고스란히 국민 생활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주유소 기름값이다. 최근 국제유가(WTI)가 경기 둔화 우려로 하락세를 보였음에도 국내 휘발유 가격은 1800원선에 바짝 다가섰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100%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5% 내리더라도 환율이 1470원에서 고착되면 원화 기준 수입원가는 오히려 상승한다. 글로벌 가격이 떨어져도 국내 소비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환율 장기화가 될 경우 휘발유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일상 전반에 직접적인 부담을 키우고 있다.

실제 해외여행 비용 역시 크게 늘었다. 항공권·호텔·렌터카 등 달러 기반 지출이 많은 만큼 환율이 100원 오를 때마다 총경비가 10%가량 증가한다.

수입 식품과 원재료 가격도 압박을 받고 있다. 커피 생두, 밀·옥수수, 치즈·올리브유 등 주요 식품과 원재료의 대다수가 달러로 거래되면서 마트·카페·식품업체의 판매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자제품과 가전 역시 부품 조달 비용이 상승해 신제품 가격에 인상 압력이 반영되는 추세다.

해외직구와 국제배송비도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제품 가격과 배송료 모두 달러 기준으로 산정되는 만큼 소비자 부담이 10% 이상 늘어난 상황이다.

여기에 항공·해운의 유류할증료가 오르며 택배·배달비 등 생활물류 비용도 상승세다.

해외 유학·연수 비용 역시 환율 영향으로 연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부담이 늘어났다. 해외 주식 투자자들은 환차손 리스크에 직면해 있으며, 기업의 수입 원가 상승이 결국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되면서 생활물가 부담은 한층 커지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탈세계화·공급망 재편으로 원화 약세가 구조화되고 있다”며 “내년 역시 상반기 고환율·하반기 중립 흐름으로, 1300원대 초반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기업들이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에 투자하는 것은 필연적 선택이지만, 그 전략이 동시에 국내 환율을 밀어 올리고 국민에게 고물가 형태로 되돌아오는 역설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고환율은 단순한 외환시장 이슈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산업 전략·수입 구조·생활물가를 연결하는 다층적 구조 문제로 자리 잡고 있으며, 향후 대응 전략은 단순 환율 안정 대책을 넘어 산업·무역·투자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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