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 화려한 쇼핑 거리와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 사이로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547석 규모의 이 극장은 유치진, 이해랑, 오태석, 차범석, 천승세 등 한국 연극의 거장들이 첫 걸음을 내디딘 역사적 공간이며, 김진규, 박노식, 백성희 같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숨 쉬었던 성지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한국 연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오롯이 담겨 있다.
2015년, 국립극단이 운영을 맡으면서 명동예술극장은 다시금 연극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고전 명작부터 창작 신작, 해외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연극 팬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열린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까지 89편의 작품을 총 1,424회 공연하며 36만 명의 관객과 만났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매 시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국립극단을 대표하는 레퍼토리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명동예술극장은 공연을 올리는 극장이 아니라,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열린 플랫폼이 되었다. 2025년에는 팬데믹으로 위축되었던 극장의 가동률을 90%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명동예술극장 르네상스’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국립극단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민에게 극장을 상시 개방하고, 공연이 없는 시간에도 연극과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극장 내부에서는 희곡 낭독 아카데미가 열리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워크숍이 진행된다. 백스테이지 투어를 통해 관객은 무대 뒤의 풍경을 직접 보고, 분장실과 연습실, 옥상 정원까지 걸어 다니며 연극의 숨결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은 관객에게 관람 이상의 ‘참여감’을 제공하며, 연극과 일상의 경계를 허문다.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는 매주 수요일 낮, 거리극 '한낮의 명동극'이 펼쳐진다. 관광객과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공연으로, 연극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낮의 햇살 속에서 배우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도시 한가운데서 살아 숨 쉬는 예술을 체감하게 된다.
명동예술극장은 레퍼토리에서도 변화를 모색한다. 고전 명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해외 신작을 소개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현대극으로 관객과의 공감대를 확장한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 연극의 세계적 경쟁력과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극장의 ‘르네상스’는 공간적 개방뿐만 아니라 심리적 접근성까지 고려한다. 배리어프리 시스템과 열린 객석,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연극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이가 함께 호흡하는 문화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연극의 민주화, 나아가 한국 문화예술의 저변 확대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명동예술극장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곳이 아니다. 여기서 현재의 배우와 관객이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으며, 과거 거장들이 걸었던 발자취 위에서 미래 세대의 창작과 경험이 꽃피고 있다. 명동이라는 도시적 배경은 그 자체로 K-컬처의 중심지이자, 연극이 관광과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접점을 제공한다.
2025년, 명동예술극장은 다시 한번 연극의 심장이 뛰는 공간이 된다. 관객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순간, 역사가 다시 기록되고, 한국 연극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속에서 국립극단은 연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길잡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명동예술극장은 과거의 성지를 넘어, K-컬처를 대표하는 미래형 연극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연극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연극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친근한 문턱’으로 다가오는 명동예술극장은, 오늘도 다시 관객을 기다리며 도시 한가운데에서 숨 쉬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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