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게임산업법이 20년 만에 전면 개정을 앞두고 본격적인 입법 논의 단계에 진입했다.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게임산업법 전면개정안, 무슨 내용을 담았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조승래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 2기 위원장을 맡은 김성회 의원, 부위원장인 김정태 동양대학교 교수와 한승용 PS애널리틱스 최고전략책임자(CSO)이 함께 했다. 정부 측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최성희 콘텐츠정책국장과 최재환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이 참석했으며 이승훈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이사, 이용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조 의원은 인사말에서 “이제는 게임이 부정적 인식으로 제도화가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쉽고 편하게 접하는 오락이자 새로운 기술과 결합돼 있는 가장 창의적인 콘텐츠라는 인식을 가지고 제도 설계를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존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게임법을 설계해야 겠다는 취지로 게임법을 발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규제 위주 체계에서 벗어나 문화산업으로서 게임의 지위를 되돌아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요구가 어느 정도 현실화됐는지 새로운 규제 공백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현행 게임산업법은 지난 2006년 ‘바다 이야기’ 사건으로 촉발된 사행성 게임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법이 만들어지고 20년여년 동안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게임산업법의 본질은 그대로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규제를 통해 게임을 통제하려는 기조가 여전히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은 법명 변경부터 게임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기존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게임 문화 및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여기에는 게임을 ‘규제 대상’에서 ‘문화’로 재정의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2000년대 중반 기준으로 만들어진 법이 최근 10년간의 산업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점도 문제다. 온라인 게임이 중심이던 시대에서 모바일 게임이 주류가 됐고 블록체인, AI, 클라우드게임 같은 신기술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게임산업법은 여전히 게임을 포괄적으로만 정의한 채 아케이드부터 온라인 게임까지 동일한 규제 틀을 적용해 왔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규제 구조 자체를 바꾼다는 데 있다. 현재 게임 심의와 규제를 담당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폐지하고 대신 게임진흥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1990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산하 기구로 출발해 게임물의 등급분류와 청소년 보호 정책을 주관해왔다. 문제는 이 기구가 규제 기관으로 인식되면서 업계와의 대립 관계가 고착화됐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진흥 기능을 전담할 게임진흥원을 새로 설립해 규제와 진흥을 분리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는 게임 개발사와 유통사, 중소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제시해온 요구다. 진흥원이 중심이 되면 국제 협력, 기술 개발 지원, 인력 양성 같은 업계 육성 정책을 더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개정안이 제시하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게임을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눈다는 것이다. 오락실 같은 장소형 게임(아케이드)과 PC, 모바일, 콘솔 같은 디지털 게임을 구분해 각각 다른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현실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시도다. 기존 법에서는 아케이드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동일하게 취급되면서 모순이 생겨왔다.
개정안은 디지털 게임을 장소형 게임과 완전히 분리해 여러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청소년용 게임의 시간 선택제를 폐지하고 본인인증 의무도 삭제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정부가 직접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했지만 개정안은 이 책임을 청소년과 가정, 학교로 분산시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신 사후 관리와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게임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문제도 업계가 오래 지적해온 사항이다. 현재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 심의를 거쳐야만 유통이 가능하다. 심의 기간이 한 달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있고 심의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한 거부 판정도 있었다. 개정안은 민간 자율 등급분류 체계를 대폭 확대해 사전심의 중심에서 벗어나 개발사들이 스스로 등급을 분류하고 정부는 사후에 모니터링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해외 게임사의 국내 서비스를 원활히 하기 위해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명문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는 해외 게임사들이 국내 진출 시 국내 퍼블리셔나 플랫폼을 통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절차와 비용이 발생해왔다. 이를 개선해 글로벌 게임의 국내 유입을 더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자율 등급분류 확대에는 책임성 확보 문제가 따라다닌다. 법무법인 화우의 김종일 게임센터장은 “민간의 자율 분류가 확대되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등급 분류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사기업의 이익에 따라 조정될 여지가 없는지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개정안이 만드는 새로운 규제 공백 중 하나는 P2E(Play-to-Earn) 게임이다. 게임을 하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게임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현행 게임산업법은 게임 내 환전을 원천적으로 금지해왔다. 하지만 기술 발전에 따라 블록체인 게임, NFT 게임, 암호화폐 연동 게임 등이 등장했다. 이들 게임은 게임과 도박 혹은 금융상품의 경계가 모호하다.
개정안은 기존 ‘환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사행성의 정의를 더욱 명확히 하는 방식을 택했다. 게임 자체를 규제하기보다 사행성의 정도를 판단해 필요한 경우만 등급 거부나 제한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P2E 같은 신규 게임 유형에 대해 무조건 불법이 아니라 사안별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접근에는 해석의 여지가 크다. 사행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판단할 것인가에 따라 게임의 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게임진흥원이 사행성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지 못한다면 업계와 규제 당국 사이의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개정안은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 근거도 신설했다. 중소 게임 개발사 지원, 글로벌 진출 지원, 세제 혜택 등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한국 게임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 정비라 할 수 있다. 개정안은 국제 경쟁 심화 속에서 국내 게임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기존 법에서 부족했던 저작권 보호 부분도 강화된다. 불법 프로그램, 사설 서버, 불법 복제 게임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거나 강화했다. 이는 온라인게임 운영사들이 요구해온 사항이다. 게임 이용자의 계정 도용, 불법 아이템 판매, 비공식 서버 운영 등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이런 불법 행위에 대해 저작권 침해로 간주하고 등급분류 거부 같은 제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부개정안은 게임산업과 규제 당국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다. 진흥 중심 거버넌스로의 전환, 등급분류 절차 개선, 규제 이원화를 통한 현장 친화적 접근 등은 모두 업계의 오래된 요구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세부 실행 과정에서 과제도 많다. 게임물관리위원회 폐지 후 심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사행성 게임의 새로운 정의가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청소년 보호 책임이 분산됐을 때 사회적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같은 질문들이 아직 남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최재한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개정안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사행성 모사 게임, 경품 규정, 새로운 게임 유형 대응 방안 등 세부 사항에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디지털 게임 중에서도 사행성을 모사한 게임이 있지만 장소형 게임과 비교하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아케이드 업계 관계자 “20년 전 바다이야기 사태의 정책 실패 책임을 여전히 산업계에 전가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청소년이 이용하는 건전한 아케이드 게임장까지 잠재적 도박장 취급을 받는 현실을 성토하며 성인용 도박 게임과 청소년용 아케이드 게임의 명확한 분리 육성을 요구했다.
이 외에도 이번 토론회에서는 게임의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한 질의와 기존 게임물관리위원회 인력을 신설되는 게임진흥원이 승계하는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게임 과몰입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 문제에 대한 질의도 이어졌지만 명확한 해결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조승래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이용자를 포함한 게임 생태계 구성원 모두가 게임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부정적인 여론들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당국도 그렇고 이전과는 게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이 느껴지는 만큼 이를 토대로 우리가 게임업계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모두의 지혜를 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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