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반복된 중대재해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R&D 투자 비중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현장 인력 부족과 하도급 구조 안전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 사고가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 해외 사례는 강력한 책임 부과와 안전 시스템 중심의 사고 판단을 기반인 만큼 국내 중대재해법이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건설현장의 안전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김동원 산업안전관리 연구위원)
국내 건설현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매년 산업재해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가 건설업에서 발생하는 현실은 한국의 건설안전 체계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사망사고가 터져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기업의 안전 불감증을 깨기 어렵다는 비판이 거세다. 여기에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스마트 건설기술을 기반으로 한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안전기술 도입이나 시스템 혁신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 구조적 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엔지니어링을 비롯한 주요 건설사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사망사고를 ‘기업의 안전관리 실패’로 명확히 규정하며 강한 책임을 강제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제도는 한국의 중대재해법이 얼마나 한계에 갇혀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비교 기준이 된다.
◆ 일본, 사망사고 발생 시 작업중지·영업정지·입찰배제까지 가능
일본은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업법을 통해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를 강하게 규정한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노동기준감독서가 즉시 작업중지명령·개선명령을 내리며, 안전조치 미비가 확인되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형사 책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조치는 사고 현장의 위험 요소를 즉각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후 개선 이행 여부에 대한 지속 감독이 뒤따른다.
건설업법상 행정처분도 강력하다. 안전규정 위반이 인정되면 영업정지·등록취소·공공입찰 참가 정지 등 제재가 내려지며, 처분 강도는 국토교통성과 지자체가 판단한다.
최근 일본 정부는 추락·열사병 등 사고 증가에 대응해 제재 기준을 강화하고 제재 기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법령을 손보고 있다. 특히 일본 제도의 핵심은 위험 발견 즉시 작업을 멈추는 '신속 차단' 원칙과 입찰 배제를 포함한 행정 제재가 결합해 기업의 영업 능력에 직접 압박을 가한다는 점이다.
◆ 영국, 기업살인법으로 무제한 벌금…'사고=기업 시스템 실패'
영국은 2007년 제정된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ct)'을 통해 조직적 안전관리 실패로 인한 사망사고에 기업 자체의 형사 책임을 묻는다. 이 법은 개인 작업자 또는 관리자의 실수보다 기업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실패했는지를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벌금에는 상한이 없는 무제한 벌금(unlimited fine) 제도가 적용되며, 기업명 공표명령·개선명령 등이 함께 내려지기도 한다.
판례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2016년 모나본 컨스트럭션(Monavon Construction)은 공사장 펜스가 도심 보도로 넘어가며 행인이 사망한 사건에서 기업살인죄가 인정돼 약 55만 파운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또한 2024년 스톤허스트 에스테이츠(Stonehurst Estates)는 불안정하게 설치된 구조물이 무너져 노동자가 숨진 사고 이후 45만 파운드의 벌금과 추가 비용을 부과받았다.
영국의 특징은 단일 사고라도 기업의 조직·관리 시스템 전체의 실패로 간주해 무제한 벌금과 기업명 공표 등 재무·평판 리스크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이며, 이러한 제도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안전 투자를 '비용'이 아닌 기업 생존 전략으로 인식하게 된다.
◆ 국내 사고 반복…예방 기술·구조 개선이 함께 필요
국내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 범위가 넓어졌지만, 행정·입찰 제재와 예방 기술 투자 면에서는 여전히 공백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많다. 드론 기반 점검, 인공지능 구조물 모니터링, 작업자 착용형 센서 등 해외에서 이미 표준화된 기술은 국내에서는 일부 대형 현장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단계에서부터 위험 정보를 통합하고 설계 단계에서 사고 요인을 제거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국내는 여전히 현장 중심의 수동 점검 비중이 높다. 단기 실적 중심의 경영 구조에서는 안전기술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고, 전문경영인 체제의 짧은 임기도 장기적 안전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처벌 중심 정책만으로는 사고 감소가 한계에 부딪힌다며, 기술 인센티브 제공·공동 연구 플랫폼 구축·이주노동자 교육 강화 등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과 영국처럼 사망사고를 기업의 구조적 책임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제도·기술·현장 문화가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반복되는 사고를 줄이는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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