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누적 신청액이 25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제도가 초기 목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재기 지원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낮은 채권 매입가율과 금융사가 감면액을 대부분 떠안는 구조가 겹치며 충당금 부담이 커지고, 차주는 신용 거래가 막혀 재기 기반이 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금융사의 ‘참여 유인’과 채무자의 ‘상환 동기’를 동시에 설계하는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매입형 기피, 중개형 거절…현장에서는 ‘막힌 지원’
새출발기금은 크게 캠코가 금융사 채권을 사들여 최대 90% 원금 감면하는 매입형과, 금융사가 금리 인하·상환기간 연장에 직접 동의하는 중개형 등 두 가지다.
금융권은 원래 매입형 참여를 선호하지만 실제 매입 실적은 부진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매입 계획은 11조5850억원이었지만, 8월 기준 집행된 금액은 4조2838억원(37%)에 그쳤다.
한 은행 관계자는 “무담보나 장기연체가 많아 매입가가 지나치게 낮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금융사가 적극적으로 매입형을 활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개형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리 감면이나 상환 기간 연장 혜택을 제공하려면 금융사가 동의해야 하는데, 조정 부동의율이 67.3%에 달해 제도 자체가 현장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있다. 실수요가 있어도 문턱을 넘기 어려운 구조적 병목이 지속되는 셈이다.
◇채무조정이 늘수록 금융사 건전성은 더 악화
캠코가 매입하는 채권 가격은 ‘시장 가격’이 기준이다. 회수 가능성이 낮은 무담보·장기연체 채권은 원금 대비 30%대 가격에 매입되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감면액의 상당 부분은 금융사가 떠안게 된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매입형이든 중개형이든 결국은 손실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정리하는 절차일 뿐, 원금을 온전히 회수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제도 이용이 늘수록 금융사의 건전성 압박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채무자 입장에서도 제약은 크다. 새출발기금을 이용하면 신용카드 발급이나 일부 금융상품 가입이 제한돼 신용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금융사는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하고, 이는 결국 대출금리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사·채무자 간 ‘위험 분담’ 재설계가 핵심
전문가들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금융사가 일방적으로 손실을 떠안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금융사가 참여할 명확한 인센티브가 없다면, 매입형도 중개형도 병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 구조에서는 금융사가 위험을 거의 혼자 감당해야 하니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며 “손실 분담 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제도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채무자에 대한 ‘상환 동기 부여’도 중요하다. 조정이 반복되면 “어차피 깎아준다”는 인식이 생겨 도덕적 해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재기를 돕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상환 성실성을 끌어올리는 구조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출발기금이 단순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넘어 실질적인 재기 지원 시스템으로 작동하려면, 금융사 인센티브와 채무자 동기를 동시에 고려한 위험 분담 방식 재설계가 필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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