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60대 여성 염현주씨(가명)는 지난달 카드배송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카드 배송원은 “카드를 배송하러 왔다. 염현주씨 주소가 ○○시 △△동 A아파트 맞냐”고 물었다.
카드 배송원이 불러준 주소는 염씨의 집 주소가 맞았다. 그러나 염씨는 카드를 신청한 적이 없어 의아했다.
카드를 신청한 적이 없다고 하자 배송원은 염씨의 생년월일까지 확인한 후 “전 배송만 해서 모르겠는데, 카드 봉투에 적힌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배송원은 “명의도용 피해 사례가 있으니 확인해보세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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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배송원과 금감원, 검사로 이어지는 전형적 기관사칭형
염씨는 배송원이 일러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고객센터 직원에게 ‘카드를 신청한 적이 없다’고 하자, 직원은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되고, 연동계좌가 사고 계좌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 염씨는 불안해졌다.
“온라인 피해구제 신청을 해보시고요. 금융감독원을 통해 신청이 접수되면 자산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어 상담직원은 염씨에게 사고 접수와 보안을 위해 어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염씨는 센터에서 보낸 문자에 담긴 URL 주소를 의심 없이 눌렀고, 앱이 깔렸다. 염씨는 직원의 안내대로 앱에 정보를 입력했다.
“잠시 후 금융감독원에서 전화가 갈 거예요. 금융앱을 사용하시면 2차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 사용하지 마세요.”
수 분이 지나자 염씨에게 1332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금융감독원 손 과장입니다. 자산보호 신청이 거절되는데, 사건에 연루된 계좌인 것 같아요. 사건조회 사이트에 접속해서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염씨는 깜짝 놀랐다. 손 과장이 알려준 사이트에 접속해 인적사항을 입력하니 정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영장이 조회됐다.
“아무래도 명의도용 피해인 것 같은데… 피해자이신 것 같으니 서울중앙지검 담당 검사에게 약식조사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드릴게요. 검찰청 대표번호로 전화해보시죠.”
염씨가 전화를 걸자, 상대는 자신이 담당 검사인 ‘이 검사’라며 딱딱한 말투로 소개했다.
“염현주씨, 이 사건은 특급 사건이고요. 구속해야할 중대 사건입니다.”
“네? 근데 전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일단 조사가 필요하고요. 녹취 중 다른 사람 목소리가 섞이면 안 되니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세요.”
염씨는 검사의 말대로 조용한 곳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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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입증과 보안 등 언급하며 골드바 요구
“지금 피해자도 많고 피해 금액도 어마어마해요. 수사에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검사는 염씨의 죄책감을 자극하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염씨는 ‘내가 개인 정보를 잘 관리하지 못해 이렇게 됐나’라는 생각에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먼저 염현주씨가 피해자인지 범죄자인지 입증을 위해서 자산 검수가 필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자금 전수조사를 위해 보유하고 계신 재산을 전부 골드바로 바꿔서 조사받아야 합니다.”
“골드바요?”
“네, 가지고 계신 자산 어치의 골드바로 조사할 거고요. 저희가 안전하게 보관해드릴 거고, 요즘은 보안 때문에 이렇게 진행합니다. 조사만 끝나면 당연히 돌려드립니다.”
염씨는 ‘희한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러한 방식을 듣거나 접해본 적이 없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대상이 됐기 때문에 압박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 골드바를 구매하시면 제가 알려드리는 장소에서 저희 직원에게 전달해주세요.”
염씨는 은행을 돌며 현금을 인출하고 금 거래소를 돌며 골드바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검사가 알려준 노상에서 한 남성에게 골드바를 전달했다.
이후 검사, 금감원 직원 모두와 연락이 뚝 끊겼다. 염씨는 모아온 대부분의 돈을 잃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이같은 ‘금(골드바) 매입형 보이스피싱 사기’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기 수법은 기존 기관사칭형과 유사하지만, 골드바를 구매해 수거책에게 넘기게 하는 방식이다.
기존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방식은 돈이 묶이거나 추적당할 수가 있지만, 금은 현금화가 쉽고 녹이면 추적이 불가능해 사기조직이 이러한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 같은 공공기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돈과 금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URL을 눌러 앱을 설치하는 것을 절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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