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사태 당시 폭력을 행사해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의원(당시 자유한국당) 26명 전원에 대해 모두 1심 유죄 선고를 내렸다.
이번 패스트트랙 1심 재판에 선 국민의힘 의원들은 나경원 의원(당시 원내대표)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당시 당대표)를 비롯하여 송언석·이만희·김정재·윤한홍·이철규·이장우·김태흠·강효상·김명연·김정재·민경욱·이은재·정갑윤·정양석·정용기·정태옥·곽상도·김선동·김성태·박대기·박성중·윤상직 등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관계자 26명에 대해 1심 법원이 전원 유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6년 7개월 만이다.
하지만, 법원이 검찰의 구형 보다 낮은 벌금형을 선고한데다 의원직 상실형이 선고되지 않으면서 사건에 연루된 국민의힘 현직 의원 6명이 모두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은 법원이 폭력을 정당화했다며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유죄 선고는 아쉽지만 법원이 야당의 저항권을 인정했다며 향후 더욱 가열찬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아울러 대장동 항소 포기를 한 검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6년7개월만에 1심 유죄 선고...나경원 2400만원, 황교안 1천900만원, 송언석 1천150만원 등 벌금형 선고
法, 검찰 공소사실 대부분 유죄 판단…"국회 방침 스스로 위반 첫 사례"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장찬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관계자 26명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 의원에게 벌금 총 2천400만원(2건에서 2천만원, 400만원)을, 당 대표였던 황 전 총리에게 벌금 총 1천900만원(1천500만원, 400만원)을 선고했다.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송언석 의원은 벌금 총 1천150만원(1천만원,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현직 선출직 공무원인 이만희·김정재·윤한홍·이철규 의원은 각각 벌금 850만원·1천150만원·750만원·550만원을,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는 각각 벌금 750만원·150만원의 형을 받았다.
나 의원 등은 2019년 4월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을 의원실에 감금하거나 의안과 사무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장을 점거한 혐의로 2020년 1월 기소됐다.
당시 여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법안으로 지정할지를 놓고 극한 대립을 벌이다가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국회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신뢰를 회복하고자 마련한 국회의 의사결정 방침을 그 구성원인 의원들이 스스로 위반한 첫 사례"라고 질타했다.
이어 "분쟁의 발단이 된 쟁점 법안의 당부(정당·부당함)를 떠나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며 "특히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 엄격히 준수해야 할 의원들이 불법 수단을 동원해 동료 의원의 활동을 저지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패스트트랙 충돌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대상도, 저항권 행사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다만 피고인들은 이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당성을 공론화하려는 정치적 동기로 범행에 나아갔다"며 "사건 발생 이래 여러 차례의 총선과 지선을 거치며 피고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나 의원에게 징역 2년, 황 전 총리에게 징역 1년 6개월, 송 의원에겐 징역 10개월과 벌금 200만원을 구형했다.
이처럼 중형 구형이 불가피했던 이유로는 2012년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의 특수성이 꼽힌다. 해당법 상 국회 회의를 방해하고자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감금 등을 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검찰의 구형보다 낮은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1심 판단이 3심까지 유지되더라도 나 의원 등은 의원직이나 지자체장 직을 유지하게 됐다.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금고 이상의 형이, 국회법 위반 사건에서는 벌금 500만원 이상이 선고돼야 직을 잃는다.
황교안 "법비들과 끝까지 싸울 것" 나경원 "정치 항거 명분 인정"
이날 법원 선고 후 황교안 전 총리는 "법과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며 "법비(법복을 입은 도적)들과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항소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의 기소가 정치기소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물론이다"라고 했다.
나 의원은 법정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인 사건을 6년간 사법 재판으로 갖고 온 것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무죄 선고가 나오지 않은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법원은 명백하게 우리 정치적 항거의 명분을 인정했다"며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독재를 막을 최소한의 저지선을 인정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판결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항소 계획을 묻는 말에는 "조금 더 판단해보겠다"고 답했다.
민주 "봐주기 판결에 분노" 혁신당 "국힘 면책 선고" 진보당 "솜방망이 처벌"
1심 선고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은 일제히 법원의 판결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죄는 있으나 벌은 주지 않겠다. 장고 끝에 악수"라며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봐주기 판결에 분노한다. 조희대 사법부답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의 죄를 벌하지 않았으니 국민의힘이 국회 안에서 더 날뛰게끔 법원이 국회 폭력을 용인하고 용기를 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법원 선고를 존중한다"면서도 "6년이나 걸린 선고와 구형량보다 현격히 낮은 선고엔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한 불법 폭력이라는 점이 사법부에 의해 명확히 확인됐다"며 "반성은커녕 이를 '명분 인정'으로 둔갑시키는 파렴치함과 법원이 불법이라 판단한 폭력을 여전히 '민주당 독재 저지'라고 정당화하는 몰염치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선고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며 "의원직 상실형을 면했지만 법원의 호된 꾸짖음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상황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지속적 고성과 막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책임을 느껴야 한다"며 "여당답게 대화와 타협 정신을 지킬 테니 국민의힘도 교훈을 얻어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태도를 보여달라"고 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검찰의 징역형 구형에 턱없이 못 미치는 솜방망이 선고로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며 "검찰은 대검 예규에 따라 솜방망이 판결에 즉각 항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나 의원에 대한 이번 판결은 '백지 면죄부'다. 왜 사법개혁이 필요한지 국민이 똑똑히 알게 됐다"며 "사법부가 스스로 정의의 무게추를 내던진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용우 의원은 "나 의원은 당장 법제사법위원회를 떠나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즉각 사퇴해야 한다"며 "법원의 뒤늦은 솜방망이 판결에도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적었다.
서영석 의원은 "검찰은 반드시 징역형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항소해야 할 것"이라고 했고, 이성윤 의원은 "국회 '선진화'가 아니라 후진화'를 시켰다"고 썼다.
범여권인 조국혁신당은 박병언 대변인 논평에서 "크게 실망스럽다"며 "국회의 본질인 회의 기능을 마비시켰는데도 사실상 모두 면책됐을 뿐 아니라 사건 기소 6년 7개월 만에야 1심 판결이 나왔다. 지연된 정의를 정의라 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 의원을 비롯해 국회에서 감금과 폭력을 행사한 의원들은 국민 앞에 진정을 담아 사과하라"며 "항소심에서 이들에 대한 양형 부담이 바로잡히길 기대한다"고 했다.
진보당 손솔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한 '국회 내란'에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어디 있는가"라며 "내년 지방선거는 국회 폭력범들과 내란 세력에 대한 심판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국회의원이면 폭력 써도 자리는 지킨다'는 완벽한 맞춤형 판결이자, 의원직 유지를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판결"이라며 "'이것도 조희대의 판결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힘 "법원, 민주당 의회독재에 제동"
장동혁 "소수 야당 항거 유죄 유감" 송언석 "文정권 검찰 정치탄압성 기소"
반면, 국민의힘은 법원이 소수야당의 항거에 유죄를 선고한 것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민주당의 의회독재에 중요한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장동혁 대표는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내 자율성은 위축시키고 국회법상 협의의 의미를 아주 넓게 해석함으로써 다수당의 폭거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한 것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그날의 항거는 입법독재와 의회폭거로부터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지켜내기 위한 소수 야당의 처절한 저항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리고 작금의 현실은 우리의 저항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며 "누더기가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실패로 확인됐고, 정치 편향성과 역량 부족으로 논란만 일으키는 공수처는 예산만 먹는 하마가 됐다"고 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원내대표로서 야당탄압의 일환으로 활용된 이번 재판에서의 유죄 판결은 아쉽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2019년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선거법 패스트트랙 강행처리는 지금 이 순간 극에 달한 다수당 의회독재의 시작점이 되는 사건이었다"며 "우리의 저항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항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어진 검찰의 기소는 애당초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문재인 정권 검찰의 정치탄압성 기소였다"며 "여당무죄 야당유죄로 대단히 선별적이고 자의적인 기소였다"고 비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진우 의원은 이날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유죄가 난 것은 아쉽지만, 국민에게 실제적으로 피해가 없고 오히려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법원이 질타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이 직접 피해를 본 김만배 사건은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지 않았나"라며 "패스트트랙 사건은 오히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했음에도 모두 벌금형이 선고된 것에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구형에 대해 법원이 판단한 것"이라며 "혐의 유무도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고, 양형에 있어서 당선 무효형이 나오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검찰도 그 부분에 대해 승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보윤 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유죄 취지로 판단한 것은 아쉽지만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오늘의 판결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저항이었음을 분명히 확인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최 대변인은 "국회를 지키기 위해 야당이 선택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저항,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항거의 명분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며 "이는 민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저지선이 존재했음을 인정한 판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판결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힘 보좌진들 "깊은 유감…앞으로도 맞설 것"
국민의힘 보좌진들은 1심에서 당시 보좌진들에게 각 1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된 데 대해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했어야 할 일이 끝내 사법부의 판단으로까지 이어진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께 피해를 줄 것이 불 보듯 뻔한 입법폭주를 막기 위해 항거한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범죄자 취급하며 오랜 시간 고통으로 몰아넣은 행태가 과연 정의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당시 민주당의 입법폭주로 탄생한 공수처와 선거법의 문제는 여전하다"며 "국민의힘 보좌진은 앞으로도 의회정신과 헌정질서를 지키는 일이라면, 단연코 피하지 않고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랜 시간 싸움을 이어온 박대기 전 보좌관(현 당 미디어특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세 명의 동료 보좌진에게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며 "아울러 그날 국회를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모든 보좌진께도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검찰 항소 할까…이준석 "검찰이 항소 자제하는지 보자"
이날 1심 판결은 검찰의 구형 보다 낮게 나왔다. 이런 경우에는 검찰은 항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대장동 사건에 대해 항소 포기 결정을 한 것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해당 사건은 검찰의 구형보다 1심 법원이 중형을 선고해 항소 포기 결정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이재명 대통령 방탄' 목적의 항소 포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니 대장동 사건은 항소를 포기하고, 국민의힘 의원이 연루된 사건은 항소를 한다면 정치적 논란이 생길 수 있게 됐다.
당장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대장동 개발비리 항소를 포기했던 검찰이 항소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국민과 함께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이 항소하는지, 항소 '자제'하는지 보면 선명한 비교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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