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청렴도 강조…'中서열 5위' 차이치, 행사 주재
(서울=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1980년대 학생운동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권력의 정점에서 밀려났다가 시진핑 체제에서 사후 26년 만에 복권된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 탄생 110주년 기념행사가 20일 열렸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야오방 탄생 110주년 기념좌담회를 개최했다.
시 주석은 후 전 총서기의 공식 복권을 선언했던 2015년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참석해 연설했다.
시 주석은 "후야오방 동지는 오랫동안 시련을 겪어온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이며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자 정치가"라면서 "민족의 독립과 해방,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불멸의 공훈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에 대해 "전쟁의 가혹한 시련에 직면해서도, 평화 건설 시기의 난관과 장애에 직면해서도, 문화대혁명 시기 심각한 박해에 직면해서도, 개혁개방 새로운 시기의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서도, 그의 이상·신념과 혁명 의지는 언제나 반석과 같이 견고했으며 당과 인민에 대한 충성심도 흔들림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야오방 동지는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며 "우리는 그와 같이 시대의 조류 앞에 용기 있게 서서 단호하게 개혁과 혁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후야오방 동지는 그릇된 기풍과 부패 현상을 극도로 증오했다"며 "동지들은 모두 청정·청렴한 정치의 본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좌담회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차이치 당 중앙서기처 서기(공식 서열 5위)가 주재했다.
중국공산당 리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스타이펑 중앙조직부장(장관), 리간제 통일전선공작부장을 비롯해 후 전 총서기의 친족과 생전 친구, 고향 대표 등이 참석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후야오방은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 초중반에 다소 급진적인 자유화 조치를 시도하고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보수파의 공격을 받다가 덩샤오핑에 의해 축출됐다.
이후 그의 사망(1989년 4월 15일)은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후야오방 사망 이후 중국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촉발됐고,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중국 당국은 그해 6월 4일 군 병력을 대거 동원해 강제 진압함으로써 대규모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중국 당국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후 후야오방 전 총서기 기일을 엄격하게 통제해 왔다.
사후에도 "당을 배척했다"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그는 같은 공청단 계열인 후진타오 국가주석 체제가 들어선 2000년대에 들어서야 서서히 명예 회복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5년 11월 20일 열린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전원 참석해 그의 복권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의 복권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그의 사망 35주년이던 지난해에도 공산당 차원의 공식 추모행사는 열리지 않았으며 온라인에 게시됐던 추모글이 삭제되기도 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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