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김정원과 맞는 네 번째 11월은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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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김정원과 맞는 네 번째 11월은 비장하다

엘르 2025-11-20 17:04: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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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견 가구인 우리 집에서 유일한 세대원 겸 동거 가족은 반려견 김정원이다. 김정원은 9월 14일 임시보호로 우리 집에 왔다가 내가 입양을 결정하면서 10월 14일 공식적으로 가족이 됐다. 김정원의 SNS ID 뒤에는 1014가 붙었다. 가족이 된 날을 기념하는 의미다. 막상 김정원과 ‘1014’를 기념하려니 김정원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시보호에서 입양으로 전환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고, 김정원은 그런 인간의 사정은 알지도 못한다. 결국 김정원에게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우리 집 현관을 넘은 날뿐이라는 생각에 모든 SNS ID를 김정원의 임시보호가 시작된 0914로 바꿨다.


김정원 계정 ID의 일부를 0914로 바꾸는 과정에서 나는 김정원의 삶에 대해, 반려동물과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임시보호를 할 때, 입양을 결정할 때, 목줄과 방석을 살 때, 사료를 살 때…. 많은 사람이 나를 칭찬했다. 특히 김정원이 구조된 강아지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결정을 이타적이고 숭고한 것으로 취급해 줬다. 김정원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우리의 삶을 직시할수록 나는 피하고 싶은 진실과 마주한다. 나는 유독 김정원에게만 영원히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


아주 먼 친구와 식사 한 끼를 할 때도 만날지의 여부, 만날 시간, 메뉴 등을 정하지만 김정원과 나의 삶에서 모든 결정은 내 독단으로 이뤄진다. 김정원을 우리 집에 들인 것, 평생 나와 살도록 결정한 것은 나와 구조자, 두 인간이 멋대로 결정한 일이었다. 혹자는 그때 내가 김정원을 임시보호하고 입양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김정원은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그래서 내가 살렸다고도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김정원에게 손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김정원을 살린 게 맞다 해도 김정원이 나를 선택한 적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걸 엄중히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는 김정원과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을 알았다. 진정한 반려인이 된다는 건 반려의 환상과 포장을 벗겨내고, 따끔거리고 까끌한 현실을 끌어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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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이 살 집의 컨디션과 모양, 목줄, 사료…. 모든 것은 온전히 내 선택으로 결정됐다. 나는 김정원이 살아갈 세계와 사용할 물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김정원은 거기에 순응하는 것으로 우리 세계가 작동한다. 언젠가 반려동물 용품 쇼핑 관련 매거진에서 김정원의 서사를 듣고 에세이를 청탁해 왔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기고한 적 있다. 김정원의 모든 물건은 내 선택으로 구비되기 때문에 좋은 물건을 꼼꼼히 골라야 하는 책임과 사랑에 관해 썼다. 해당 에세이는 클라이언트의 반대로 전면 수정을 맞게 됐다가 결국 게재가 취소됐다. 내용이 너무 무겁다는 게 이유였다. 반려 생활에 대한 판타지와 미담 대신 반려 가족 당사자인 나조차 직면하기 시작한 이야기를 상업적인 콘텐츠에 송고한 내가 눈치 없는 작가였다. 담당자는 위로에 가까운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생각했다. 애견이 반려견으로 바뀌는 진실에 관해.


‘애견’은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 예뻐하는 강아지다. 그 시절의 수많은 반려인은 ‘애견’이 붙은 숍에 가서 개를 사고, 이름에 걸맞게 예뻐하다가 애정이 희미해지는 어느 날 삶에서 자연스럽게 애견을 치웠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쏟는 강아지였던 ‘애견’은 쌍방이 교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강아지라는 의미의 ‘반려견’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반려견 김정원은 이름에 걸맞게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강아지이지만, 사실 내 모든 결정에 맞춰 살아간다는 점에서 ‘더불어’라는 말이 염치없게 느껴진다. 반려는 이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물 먹는 김정원을 보면서 내가 골라서 배치한 물그릇의 높이와 너비가 김정원에게 잘 맞는지 끝없이 자문하거나, 김정원에게 채운 하네스가 상품 상세 페이지에 나온 것처럼 김정원의 가슴둘레에 맞는 건지 불안해하고, 겨드랑이 어딘가에 애매한 압박감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하는 일, 대중교통수단을 타려고 김정원을 강아지 전용 백팩에 넣어 앞 가방으로 메고 걸을 때 좌우 어깨끈 높이의 미세한 오차로 가방 속 정원이가 불편해할까 봐 엉거주춤 걷는 일이 다 그렇다. 이 모든 걱정이 숭고한 사랑으로 해석되지만, 실은 상의할 수 없는 김정원 대신 내 독단에 딸려오는 책임에 불과하다.


이달은 내가 김정원과 맞는 네 번째 11월이다. 입양 직후인 첫 번째 11월에 나는 벅찬 동시에 우쭐했었고, 두 번째 11월에는 고군분투했고, 세 번째 11월에는 평온해졌다. 네 번째 11월, 나는 이제야 비장하다. 2022년 9월 14일에 내가 탈취해 온 책임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김정원을 비장하게 쓰다듬으며 또 깨달았다. 이 책임은 특권이 확실하다는 것. 이 거대한 죄책감과 환희를 안겨주는 단 하나의 존재가 김정원이라니, 이런 호사가 내 품에 오다니. 내 품에 4년 주기로 오는 올림픽처럼 나는 다시 벅차고 우쭐해질 것이다. 정원아,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이런 언니랑 평생 살아야 돼. 응, 반려란 게 원래 그래.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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