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권용재 감독 ‘고당도’, 단편 필모 속 감정 실험의 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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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권용재 감독 ‘고당도’, 단편 필모 속 감정 실험의 집약

뉴스컬처 2025-11-20 15:25: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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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가을이 물든 도시, 끝없이 이어지는 장례식장의 풍경 속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묘하게 웃는다. 누군가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픔과,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작은 이익 사이에서 마음은 떫어지듯 꼬인다. 권용재 감독의 신작 ‘고당도(The Price of Goodbye)’는 이 지점에서 관객을 붙잡는다. 블랙코미디적 유머와 서스펜스 속에서도 화면 한 켠에는 늘 인간의 흔들림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린 감정이 자리한다. 권 감독의 영화는 웃음과 안도,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묵직한 울림을 동시에 선사하며, 단편에서 쌓아올린 세계를 장편이라는 스케일로 확장한다.

영화 '고당도' 스틸컷. 사진=㈜트리플픽쳐스
영화 '고당도' 스틸컷. 사진=㈜트리플픽쳐스

권 감독의 첫 단편 ‘굿바이! 굿마미’는 애도의 순간을 사회적 형식과 교차시키며 인간 내면의 미세한 표정을 포착했다. 인물들은 슬픔을 경험하기보다 슬픔처럼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권 감독은 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조용히 관찰하며, 감정과 사회적 구조 간의 긴장을 탐색한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억압과 사회적 형식의 충돌은 권 감독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테마다. 감정은 폭발하지 않고, 일정한 제약 속에서 움직이며, 그 움직임 속에서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과 사회적 긴장이 드러난다.

이어진 ‘조의’에서는 장례라는 사회적 구조가 인물의 감정을 어떻게 억누르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조문객의 서열, 조의금의 액수, 의례적 시간표 등 모든 요소가 인물의 내적 충돌과 연결된다. 권 감독은 이러한 장치들을 감정을 규율하는 구조적 힘으로 끌어올린다. 인물들의 작은 어긋남과 불협화음은 장면의 드라마적 긴장뿐 아니라, 관객에게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인간이 겪는 불안을 체감하게 한다. ‘굿바이! 굿마미’에서 포착한 개인적 감정의 지연이 ‘조의’에서 구조적 압력으로 확장되는 과정은, 권 감독 영화 세계의 연속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개꿀’에서는 경제적 압박과 가족 관계, 생존이라는 조건이 감정을 규정하는 방식을 실험한다. 권 감독은 감정의 폭발보다는 조건에 의해 제한되는 감정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블랙코미디적 요소는 인간 내면의 결핍과 조건적 억압 사이의 긴장을 표현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장편으로 확장될 세계관의 토대를 마련한다. ‘개꿀’에서 인물의 선택과 행동은 도덕적 판단보다는 구조적 제약의 산물로 표현되며, 관객은 이를 통해 인간 행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된다.

영화 '고당도' 스틸컷. 사진=㈜트리플픽쳐스
영화 '고당도' 스틸컷. 사진=㈜트리플픽쳐스

장편 ‘고당도’는 단편에서 탐구한 인간과 구조, 감정과 억압의 충돌을 집약한다. 장례라는 의례적 공간 속에서 가족, 생존, 경제, 사회적 체계가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권 감독은 감정을 극적 폭발로 소비하지 않고, 억제와 지연 속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단편에서 실험한 감정과 구조의 상호작용이 장편에서는 보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형태로 확장되어, 관객은 구조 속에서 억눌린 감정의 흐름을 화면 속에서 체험하게 된다.

권 감독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인물 내적 갈등을 외적 장치와 결합하는 방식이다. ‘굿바이! 굿마미’에서는 애도의 형식이, ‘조의’에서는 장례 예법과 사회적 관습이, ‘개꿀’에서는 경제적 조건과 생존 전략이 인물의 감정을 규율한다. ‘고당도’에서 권 감독은 이러한 장치들을 통합된 구조 속에 배치하며, 장례와 가족의 이해관계, 재정적 압박이 인물의 내적 갈등과 맞물리는 과정을 화면 전체에 촘촘히 배치한다. 장편의 시간적 여유는 단편에서 발견한 세밀한 관찰을 입체적 장면으로 확장할 기회를 제공하며, 장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포착한다.

권 감독 영화에서 감정은 언제나 억눌리고, 지연되며, 구조적 조건 속에서 변형된다. 관객은 이러한 변형 과정을 통해 인물의 내적 갈등과 구조적 압박을 동시에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권 감독 영화 특유의 긴장과 블랙코미디적 톤을 형성하며, ‘고당도’에서 극대화된다. 장편은 단편보다 확장된 스케일을 통해 권 감독의 실험적 접근을 더욱 명료하게 보여주며, 인물과 구조, 감정과 억압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관객에게 경험하게 한다.

영화 '고당도' 스틸컷. 사진=㈜트리플픽쳐스
영화 '고당도' 스틸컷. 사진=㈜트리플픽쳐스

‘고당도’의 중심에는 가족이라는 복합적 존재가 자리한다. 권 감독은 피로 맺어진 관계, 선택할 수 없는 연대, 세대 간 충돌과 이해라는 요소를 섬세하게 다룬다. 가족 구성원들은 경제적 필요와 감정적 억압 사이에서 작은 기회를 잡기 위해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장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블랙코미디적 긴장과 사회적 풍자를 함께 담아낸다.

권 감독 영화의 매력은 인간의 약점과 갈등을 윤리적 판단이 아닌 구조적 조건의 결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선은 기존 상업영화에서 흔히 보는 극적 해소와 달리, 관객에게 묵직한 성찰을 남긴다. ‘고당도’ 속 가족들은 희극적 장치가 아니라 생존과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적 인간으로서의 무게를 지닌다. 장례와 재정, 가족이라는 겹겹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은 관객에게 웃음과 슬픔, 긴장과 안도의 감정을 동시에 선사하며 권 감독 영화 세계의 독창성을 증명한다.

권 감독은 장면을 구성할 때 항상 인물의 내적 상태와 외적 구조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단편에서 보여준 미묘한 카메라 움직임과 장면 구성은 ‘고당도’에서 장편 규모로 확장되어,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읽게 한다. 카메라는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역할을 넘어, 관객이 인물의 감정을 구조적 상황 속에서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장편 ‘고당도’에서는 이러한 시각적 실험과 장면 구성의 자유가 더욱 두드러진다. 장례식장과 가정이라는 제한된 공간, 인물들이 놓인 경제적 압박과 사회적 시선은 권 감독이 구축한 구조적 긴장의 무대가 된다. 관객은 이를 통해 단순한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맥락과 인간 심리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고당도' 포스터. 사진=㈜트리플픽쳐스
영화 '고당도' 포스터. 사진=㈜트리플픽쳐스

권 감독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은 블랙코미디적 톤과 서스펜스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감정 억압과 구조적 제한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러한 방식은 단편에서도 관찰되었지만, 장편에서는 사건과 구조, 감정이 보다 복합적으로 얽혀 더욱 깊은 몰입을 제공한다.

결국 ‘고당도’는 권 감독이 단편에서 탐구해온 주제와 형식의 총합이며, 장편이라는 확장된 스케일 속에서 그의 세계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감정과 구조의 충돌, 억압과 지연,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은 관객에게 깊은 몰입과 성찰을 선사한다. 단편에서 시작된 탐구가 장편에서 결실을 맺으며, 앞으로 권 감독이 어떤 구조적 실험과 감정적 탐색을 이어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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