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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퀴리 부인’으로 불리는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뮤지컬 ‘마리 퀴리’에도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흔히 마리 퀴리라고 하면 방사성 물질인 라듐을 발견해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여성으로 기억할 뿐 초창기 이 신물질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20세기 초 사람들은 이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 스스로 타오르며 ‘꺼지지 않는 불’로 여겼고 그 치료효과를 과신해 치약, 헤어크림, 식품에도 넣었다고 한다. 뮤지컬은 이 물질로 시계에 야광 페인트를 칠하는 여성 도장공들이 라듐에 중독돼 하나 둘 죽어 나가는 걸 알게 된 마리 퀴리가 라듐을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기업가와 맞서 그 위험성을 알리고 엑스레이 같은 유용한 일에 쓰려 노력한 일생을 그렸다. 뮤지컬은 그 과정에서 평생의 동반자이자 함께 해온 연구자였던 남편 피에르 퀴리와 둘도 없는 친구 안느를 잃는 등 고통스러웠던 마리 퀴리의 삶을 담았다. 라듐이라는 물질을 발견했을 때는 환희였지만 그 후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매일 쪼였던 프로메테우스처럼 고통받았고 끝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그녀는 생전 노벨상 수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듐은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사용하면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자연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 과연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비밀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만큼 인간은 성숙한가요.”
최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재해석한 영화 ‘프랑켄슈타인’도 바로 이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천재 소설가 메리 셸리가 불과 열여덟 살에 쓴 이 작품의 부제는 다름 아닌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다. 죽은 개구리 뒷다리에 전기 자극을 넣어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의사 루이즈 갈바니의 실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쓴 이 작품은 신의 영역에 도전한 빅터라는 한 인간이 결국 마주하게 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인간을 창조하려 했지만 괴물을 만들어낸 빅터는 복수를 위해 세상 끝까지 그를 추격하다 죽음을 맞이하고 괴물 역시 스스로 북극의 빙하 속으로 사라진다. 비극을 불러온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차갑디차가운 북극의 얼음으로 꺼버리려는 작가의 의도랄까.
북극 탐험대가 조난당한 빅터를 구조하고 그 빅터가 선장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는 액자소설 구성 그대로 토로 감독의 영화 ‘프랑켄슈타인’도 북극에서 빅터를 구조하게 되는 서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원작과 다른 점은 이 탐험대의 배가 꽁꽁 얼어붙은 바다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일등항해사는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선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얼음을 깨고 목표인 북극을 향해 가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선장의 이런 모습은 마치 인간의 도전이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 프로메테우스와 닮았다.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당연한 관성이 돼버린 현대의 인간을 상징하는 듯한 인물이다. 하지만 선장은 빅터와 그가 창조한 괴물이 불러온 지독한 악연과 비극을 다 듣고 나서 마음을 바꾼다. 목적지인 북극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배를 돌린다.
20세기의 마리 퀴리라는 프로메테우스가 가져온 불이 어둠을 밝히는 라듐 같은 원소로 표상되는 과학의 힘이었다면 지금 21세기 프로메테우스가 가져온 불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세계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는 ‘인공지능’(AI)이 아닐까.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하나만 열고 물어보면 답을 해주고 서로 다른 언어로도 소통하게 해주며 나아가 소설 같은 창작의 영역에도 들어와 스스로 소설을 쓰는 AI의 세계. 우리는 이미 그 편리와 효율에 빠져 들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불러올 디스토피아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아니 외면한다고 해야 할까.
최근 ‘브레이킹 배드’의 빈스 길리건 감독이 애플TV+에 공개한 새 시리즈 ‘플루리부스:행복의 시대’는 바로 이 AI 혁명이 불러올 비극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낸 공상과학(SF) 판타지다. 어느 날 외계로부터 온 신기술이 사람들의 생각을 모두 하나로 연결되게 만드는데 그 변화한 세계의 예외자인 캐럴이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세상을 행복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작품 소개처럼 이 시리즈는 모두가 연결돼 행복 과다의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포로 그린다. 인간의 사적이고도 내밀한 정보들이 ‘데이터’로 치환돼 AI라는 거대한 ‘통합 정보’로 묶이고 있는 현시대가 그 편리와 효율로 숨겨놓은 괴물의 공포가 캐럴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어쩌면 행복 과다의 행복이란 ‘가짜 행복’일 수 있고, 오히려 불행이 진짜 행복을 마주하게 할 수 있다는 반어적 풍자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과연 우리는 21세기 프로메테우스의 불 AI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마리 퀴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과연 그만큼 성숙할까. 어쩌면 우리는 저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꽁꽁 얼어붙은 얼음 바다를 깨치면서까지 무작정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옆에 불행과 함께 늘 존재해온 것이지만 저 멀리 막연히 무한한 행복의 나라가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과연 그 괴물을 본 후(어쩌면 벌써 봤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 배의 방향을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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