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백수의 괴로움' 봇물…"살아 숨쉬는 게 문제"
"'눈치밥'에 비상구 계단서 끼니 해결" 인증샷까지
우울·고립·자책…각자 사연 담아 자기 고백
장기 실업자 11만9천명…통계 작성 이후 최고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빵 사서 계단에서 먹방 했음."(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ri***')
불황으로 실업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무직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일상에서 겪는 심리적 압박감을 털어놓는 사연들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그중에는 가족에게조차 '죄인'이 된 듯 눈치를 보며 집 밖의 비상구 계단 등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믿기 힘든 '인증샷'까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지난달 10일 엑스 이용자 'nek***'는 비상구 계단에 놓인 일회용 배달 용기 속 마라샹궈 사진을 올리며 "무직백수 비상구 계단에서 마라샹궈 먹고 있음"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친한 동생들이 왜 맨날 집에서 쫓겨나냐 하는데 백수는 집에 있으면 눈치가 많이 보인다는 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라고 덧붙였다.
돈을 벌지 않는 백수가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조차 눈치가 보인다는 취지로, 지난 19일 기준 조회수 280만회·리트윗 3천600여건을 기록했다.
"20대 초반인데 공감합니다"('res***')·"백수가 무슨 배달음식이야"('Gom***')·"그래도 비상구 계단에서 마라샹궈 먹기는 신기하긴 하네요"('ims***') 등의 반응이 달렸다.
계정 운영자는 "누가 비상구 계단으로 걸어 올라오면 어떡하냐"는 댓글에 "저 보고 당황하시길래 사과드리고 빠르게 치우고 계단 비워드렸다. 지나간 다음에 다시 깔고 먹었다"는 답을 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엑스 이용자 'jae***'는 해당 글을 인용하면서 비상구 계단 위에 '탕짬면'(탕수육+짬뽕)을 올려둔 사진과 함께 "나 같다…"고 적기도 했다.
'비상구 계단 마라샹궈' 게시물이 올라온 계정은 팔로워 1만7천여명을 보유했으며, 2020년 9월 개설됐다. 백수의 일상과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글을 주로 올린다.
그럼에도 집을 놔두고 비상구 계단에서 취식한다는 게 충격적이라 지난 18일 계정 운영자에게 쪽지를 보내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게 왜 궁금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다만 마라샹궈를 배달시킨 음식점 상호명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줬다.
SNS에는 백수로서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인다는 토로가 이어진다.
엑스에는 "살아 숨쉬는 게 문제가 됨. 백수는 누워 있으면 게으르다고 욕먹고, 욕 그만 먹고 싶어서 집안일 하면 일을 알아보라고 한다"('Sun***'), "하루하루 우울하고 내가 이 집에 붙어 사는 빈대, 벌레 같다"('jo***'), "평일엔 집에 있으면 죄인 됨"('cok***')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취업준비생 김종헌(27) 씨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집안 눈치가 보이는 것 같다"며 "가급적이면 집에 있지 않고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정훈(24) 씨는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선배들을 보면 나도 압박감이 느껴진다"며 "빨리 뭘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이 가장 크다"고 토로했다.
백수 상태를 둘러싼 불안과 자기 책망, 장기 실업의 고립감도 솔직하게 공유되고 있다.
스레드 이용자 'nai***'는 스스로를 "30대 중후반 HSP(고감수성), 우울, 불면증, 은둔형 외톨이, 백수, 모솔"이라고 소개하며 "20대부터 진로를 찾지 못했다. 나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썼다.
스레드에는 이외에도 "행정 보조·은행 계약직을 하다가 계약 종료 후 백수"('ha_***'), "서른두 살, 넉 달째 쉼.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 같아 막막하다"('jus***'), "중소기업 퇴사 후 1년째 취업이 안 된다. 더 좋은 기업 준비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다"('che***') 등 비슷한 고백이 이어진다.
장기적인 노동 공백을 의지와 노력 부족으로 보는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스레드 이용자 'gue***'는 "백수 생활 길어지니 내가 점점 예민해진다. 이력서를 수도 없이 냈는데 면접 한 번 잡히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kwa***'는 "30대 백수다. 전에는 일을 안 하면 불안해서 아르바이트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두렵다"고 적었다.
지난 1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6개월 이상 구직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장기 실업자는 지난달 기준 11만9천 명으로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전체 실업자(65만8천 명) 가운데 장기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8.1%로,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고학력인 20∼30대 장기 백수가 3만5천명으로, 13개월 만에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청년 '쉬었음'은 40만9천명으로 나타났다.
haem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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