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노랗게 물든 가로수의 은행나무 잎들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본격적인 겨울로 진입 중인데, 여전히 사무실에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가득합니다. 잠깐의 여유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창넓은 카페에 여러 사람이 모였습니다.
뜨거운 커피에서 나는 은은하고 산뜻한 향이 따뜻함을 선사합니다.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프네요.'
커피에 일가견이 있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엉뚱하게 에티오피아처럼 나라 이름에 <검다>의 뜻을 가진 나라는 어디일까? 생각했습니다. 날씨, 단풍, 건강 등등 여러 이야기가 두서없이 섞이는 가운데 나는 커피만 홀짝이며 내 머리 속을 뒤졌습니다. 일전에 한번 정리해 둔 적이 있었는데요. 소말리아, 모리타니, 기니, 수단, 몬테네그로 등 여섯입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이들 5개국은 뜻이 동일합니다.
에티오피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태양에 그을린 사람'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국가명이 되었습니다. 소말리아는 고대부터 아랍상인들이 이 지역사람들을 검다며 '소마리' 라 불렸습니다. 모리타니의 '모르'는 그리스어로 '피부가 검은 사람'에서 변화되어 모리타니가 되었습니다.
수단은 아프리카어로 '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니는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변화된 말로 '검다'는 뜻입니다.
검정은 이처럼 다채롭고 많은 색깔을 가졌습니다. 명칭뿐 아니라 실제 색깔도 다채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몬테네그로는 이름 그대로 <검은 산 Monte>의 산악국가입니다. 100명당 39.1개의 총기를 가진 세계 3위의 국가입니다. 역사적으로 오스만과 유럽의 경계라 전쟁도 많았고, 현재 밀거래와 돈세탁, 도박 등의 온상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미국인은 약 4억정으로 100명당 약 120정 꼴로 세계1위('2023년, 스위스 연구소)입니다. 그중 미국인의 3%가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지요. 사냥이 취미라는 미국인 한 가정의 집에는 총기가 280정이 넘게 보관하고 있는데, 거의 총포상 수준입니다.
'2주 뒤면 비상계엄 선포한 지 1년이네요.' 한 멤버의 말에 '벌써?'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며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추워져 너무 놀랐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모질고 긴 분열의 그해 겨울, 그때 나는 워싱턴 대통령을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이 워싱턴입니다. 그의 이름은 수도 이름 외에도 300곳 이상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대한 추장의 이름인 시애틀, 그 도시를 품고 있는 워싱턴주는 서북단에 위치하는데 워싱턴의 고향이나 경력과 관련이 있냐고요? 전혀 없습니다. 이 밖에도 주요 도시를 보면 인디애나의 워싱턴시, 캔자스의 워싱턴시, 플로리다·유타·오리건주의 워싱턴 카운티 등등 매우 많습니다.
미국에 유명 대통령의 지명이 많다고 하지만, 워싱턴만큼 사용한 대통령은 없습니다. 그만큼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은 대통령입니다. 워싱턴은 왜 그렇게 존경을 받을까요? 워싱턴은 1789년 4월 40일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혈연이 아니라 국민이 투표로 뽑은 국가체제를 시작한 최초의 역사적 실험을 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실험이 성공한 데는 워싱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던가요. 어느 나라든 시작이 중요합니다. 워싱턴의 업적은 정책이나 일처리 방식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업적은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두번의 임기제한은 법이 아니라 자제의 규범이었습니다. 당시 미합중국은 모든 면에서 불안정했고 주변에서 독립전쟁의 영웅인 워싱턴이 더 오래 통치해 줄 것을 원했습니다. 당쟁과 파당은 끊이지 않았고 남과 북의 지역감정도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데도 워싱턴은 동료 정치인과 국민, 그리고 위대해질 조국을 믿고 퇴임했습니다. 그 믿음의 토대는 미 건국의 이상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이 자부심이 결국 워싱턴을 넘어 미국인들의 자부심으로 승화, 발전된 것입니다. 워싱턴은 후손들을 믿고 권력을 자제했고 후배 정치인들은 이 전통을 중시하여 보이지 않는 규범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자신이 바랬던 것처럼 미국인의 자부심은 확대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미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정치인이 된 것입니다.
정치의 실패를 법으로, 군대로 해결하려다 생긴 비상계엄의 비극은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회를 극심하게 갈라 놓았습니다. 엘리트들이 절제와 자제를 잃었을 때 민주주의는 극도로 불안정해집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통치형태다. 지금까지 시도됐던 다른 통치형태를 모두 제외한다면."
처칠은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적이면서도 역설적인 통찰력을 보여 줍니다. 민주주의는 하자투성이입니다. 그래도 역사상 가장 나은 정치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절제의 규범이 작동된다면 말입니다.
편향이 가장 쉬운 길입니다. 고위직조차 상사의 지시대로만 일하면서 별 생각없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려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사회적으로 불의가 커져 권력형 부패는 늘어날 것이고 사회는 쇠퇴할 것입니다. 한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그동안 중심을 잘 잡아오던 한국인들조차 정치적 부족주의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옳다.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비난할 누군가를 찾는 데만 몰두합니다. 이건 너무 쉬운 선택으로 중심을 잃기 십상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제하고 중립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 우리의 민주주의도 건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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