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면 거리마다 달콤한 버터 향이 감도는 디저트가 생각난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작은 중세 도시 로텐부르크옵데어타우버(Rothenburg ob der Tauber)는 특히 그 향기가 짙게 감도는 곳이다. 붉은 지붕이 줄지어 선 거리마다 카페와 제과점이 들어서 있고, 그 안에는 눈처럼 하얗고 둥근 과자가 유리 진열대에 놓여 있다. 이름은 ‘슈니발렌(Schneeballen)’으로 독일어로 ‘눈덩이’를 뜻한다.
슈니발렌의 유래
이 과자는 이름처럼 눈을 뭉쳐 만든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밀가루 반죽을 리본처럼 얇게 잘라 여러 겹으로 말아 둥근 틀에 넣은 뒤 기름에 튀긴다. 튀긴 뒤에는 슈거파우더를 솔솔 뿌리거나, 초콜릿·코코넛·시나몬을 입혀 색다른 풍미를 더한다. 겉은 바삭하지만 안쪽은 부드럽게 부서져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첫입에 고소한 버터 향이 퍼지고, 이어서 은은한 바닐라 향이 감돈다.
슈니발렌의 역사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텐부르크 주민들은 밀가루와 달걀로 간단한 반죽을 만들어 튀겨 먹었다. 처음에는 설탕 대신 소금을 곁들여 간식처럼 즐겼고, 제사나 마을 잔치에도 빠지지 않았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 이 튀김과자는 달콤한 사치품이었다. 19세기 말 설탕이 보급되면서 슈니발렌은 지금과 같은 디저트 형태로 발전했다. 이후 지역 제과점들이 제각기 다른 레시피를 선보이면서 전통 과자에서 관광 명물로 자리 잡았다.
로텐부르크에서는 매년 겨울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슈니발렌을 파는 노점은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선다. 여행객들은 눈이 내리는 골목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슈니발렌을 깨 먹는다. 차갑게 식은 바삭한 반죽이 이가 시릴 정도로 단단하지만, 설탕이 입안에서 녹으며 고소함을 남긴다.
한국에서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슈니발렌
슈니발렌은 독일에서 주로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판매되지만, 한국에서는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2010년대 초반 영화관과 백화점 매대에 등장하면서 ‘망치로 깨 먹는 과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둥근 모양의 과자를 망치로 두드려 조각내 먹는 이색적인 방식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시엔 초콜릿이나 딸기 맛처럼 화려한 색상과 달콤한 코팅이 덮여있었다.
하지만 한국식 슈니발렌은 본래 독일 현지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과 달리 너무 단단하고 단맛이 강했다. 한 번쯤 체험 삼아 사 먹는 소비가 많았고, 결국 몇 년 만에 매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2015년을 전후로 백화점과 카페에서 사라지며 ‘한때 유행했던 과자’로 남았다.
그러나 여행이 일상화되고 독일 여행객이 늘면서 다시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로텐부르크를 다녀온 사람들은 현지에서 맛본 부드럽고 고소한 슈니발렌의 맛을 SNS에 공유했고, 이들이 ‘원조’를 찾는 소비층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개인 제과 공방에서도 직접 만든 제품이 등장했다. 밀가루 대신 통밀이나 흑미 가루를 쓰고, 설탕 대신 천연 꿀을 사용한 건강한 버전도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의 ‘이색 간식’에서 ‘수제 디저트’로 인식이 바뀌며, 슈니발렌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7세기부터 이어진 전통의 손맛
슈니발렌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정성과 손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밀가루, 달걀, 버터, 생크림, 소금을 넣어 반죽을 만들고, 밀대로 얇게 편 뒤 리본 모양으로 자른다. 그 반죽을 둥근 금속 틀에 돌돌 감아 넣으면 자연스럽게 눈덩이 형태가 잡힌다. 이후 170도 정도의 기름에 넣어 천천히 튀긴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겉만 타고 속이 익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튀긴 뒤에는 슈거파우더를 입혀 가장 기본적인 ‘화이트 슈니발렌’을 만든다. 여기에 초콜릿을 입히면 ‘브라운 슈니발렌’, 코코넛 가루를 더하면 ‘화이트 코코넛 슈니발렌’이 된다. 딸기파우더나 녹차파우더를 뿌려 색감이 화려한 버전도 인기가 많다. 독일 현지에서는 수십 가지 맛으로 만들어지며, 특히 코코넛과 모카맛이 가장 대중적이다.
로텐부르크에서는 가정마다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가 있다. 어떤 집은 럼주나 시나몬을 넣어 향을 강조하고, 또 다른 집은 반죽에 레몬 껍질을 섞어 상큼함을 더한다. 또한, 독일에서는 결혼식이나 축제 때 선물로 나누며 행운을 상징하는 과자로 여긴다. 둥근 모양이 ‘완전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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