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그녀의 연주는 이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본 셈이었다.”
– 핀커스 주커만
미도리의 연주는 기술적 화려함을 넘어, 음악 속에 담긴 시간과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으로 주목받는다. 음표의 재현을 넘어, 각 음 하나가 내포한 서사를 음색과 호흡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다. 그녀에게 바이올린은 도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이며, 음악적 사고와 감정을 투사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다.
오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진행될 리사이틀은 미도리의 음악적 탐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다. 1부의 시작을 장식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에서는 밝고 온화한 서정성과 기교적 정밀함이 결합된다. 미도리는 이 곡에서 음과 음 사이의 간격과 호흡을 통해 청중이 음악적 흐름 속에 ‘시간’을 체감하도록 만든다.
슈베르트의 환상곡에서는 내면적 긴장과 외적 화려함이 교차한다. 미도리는 곡의 다양한 감정적 층위를 섬세하게 드러내며, 열정과 서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특히 미도리의 연주는 격정적 구간에서 폭발적인 표현에 의존하지 않고, 긴장과 해소를 세밀하게 조율하여 청중이 감정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음악적 해석이 감정 전달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유와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2부에서 시작하는 풀랑크 소나타는 20세기 음악 특유의 섬세한 조형미와 정서적 깊이를 탐구한다. 미도리는 이 작품에서 음색과 음향적 공간의 차이를 세밀하게 다루며, 서정적 선율이 가진 현대적 감각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특히 리투아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이에바 요쿠바비추테와의 긴밀한 호흡은 작품의 구조적 균형과 정서를 동시에 살리는 중요한 요소다.
이어지는 클라라 슈만과 로베르트 슈만의 세 개의 로망스는 각기 다른 작곡가적 감성이 미도리의 해석을 통해 연결된다. 미도리는 두 작곡가의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표현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언어로 그 감정을 재구성한다. 이는 연주자가 단순한 재현자가 아닌, 곡 속 정서를 재해석하는 ‘중재자’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슈베르트의 화려한 론도는 리사이틀을 마무리하며 청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미도리는 여기서도 기술적 화려함을 목적화하지 않고, 음악적 흐름과 감정적 긴장 속에서 론도의 다층적 구조를 강조한다. 이러한 접근은 연주를 음악적 사건으로 전환시킨다.
미도리의 연주는 기술적 완벽함이 목표가 아니라는삿실도 주목해야 한다. 음정과 리듬의 정확성은 기본이며, 그녀는 각 음 하나하나에 내재한 시간적·심리적 긴장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청중은 음악 속 시간과 감정의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피아노와의 협연은 미도리의 음악 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요쿠바비추테의 섬세하고 민감한 반응은 바이올린 선율과 상호작용하며, 공간적·정서적 다층성을 형성한다. 두 악기의 상호작용은 곡의 구조적 의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청중이 단일 음이 아닌 전체 음악적 사건을 경험하도록 안내한다.
미도리의 연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의미가 있다. 고전에서 낭만, 20세기 음악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 구성은 음악적 시간과 감정을 연결하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각 작품 사이의 정서적 대비와 흐름은 미도리의 해석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교육과 사회적 실천과 연결된 그녀의 음악적 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도리와 친구들’ 등의 활동은 음악이 단순한 예술적 산출물이 아니라, 인간 경험과 사회적 관계를 탐구하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리사이틀에서의 해석과 교육적 실천은 서로 연계되어, 음악의 의미를 확장한다.
결국 이번 리사이틀은 미도리의 연주 철학과 음악적 철학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자리다. 청중은 기술적 완벽함을 넘어, 음악이 가진 시간적·심리적 층위를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미도리의 바이올린은 소리 이상의 의미를 담아, 음악을 통한 존재와 감정의 서사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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