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채용시장의 대세로 여겨졌던 '중고신입' 열풍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경기 불황 속에서 기업들의 이직 리스크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신입사원다운 열정과 패기', '조직에 대한 충성도' 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반면 이직을 염두한 근무를 선택한 '중고신입'에게는 부정적인 평가가 뒤따르는 모습이다. 이미 일부 대기업들은 이미 채용과정에서 '신입다운 신입'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조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고신입 기피하는 기업들 "신선함 떨어지고 '이직 염두한 입사' 성향 쉽게 안 바뀌어"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하반기 주요 대기업 대졸 신규채용 계획 조사'에 따르면 1~200대 기업 중에서 2~3년 경력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해 전체 대졸 신입사원 중에서도 70% 이상이 업무 경력이 없는 인재들로 구성됐다. 청년 구직자들이 가장 강력한 스펙으로 여기고 있는 '중고신입' 타이틀이 채용 결과와는 무관했다는 방증이다.
서울의 중견 건설사에서 2년간 근무한 후 새로 취업을 준비 중인 성정한 씨(30·남)는 "현재 1년 반 넘게 이직을 준비 중인데 면접에서 빈번히 탈락하고 있다"며 "면접에서 퇴사를 충성심 부족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과거의 이력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당 경력을 빼고 면접을 준비할 수도 없고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하염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이재성 씨(31·남)는 "1년 반의 경력을 쌓고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고 있지만 면접에서 '왜 그만뒀는지'에 대한 질문을 수차례 받았고 실제로도 계속 탈락하고 있다"며 "경력직으로 지원하자니 재직 기간이 너무 짧고 신입 지원에선 쉽게 이직하는 사람처럼 보이다 보니 벌써 2년째 구직활동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요즘 면접을 보면 기업들이 한 명을 뽑아도 계산적인 사람보단 아무것도 몰라도 애사심 있고 열정 있는 사람을 더욱 선호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중고신입' 채용을 꺼리는 기조는 짧은 근속기간으로 인한 업무 공백 및 비용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이직을 염두하고 입사를 결정한 이력을 놓고 개인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고 조직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성향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한국경제학회(KEA)가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상반기 주요 대기업 대졸 신입 채용 계획 조사'에 따르면 경력 신입 채용자의 절반 이상이 1~2년(50.8%)의 근속 기간을 기록했다. 이어 ▲6개월~1년(32.2%) ▲2~3년(8.5%) ▲3년 이상(5.1%) 순으로 나타났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3년 넘게 근무하는 비율은 응답자의 5%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채용시장에서도 실무 능력 보단 '배우려는 의지와 태도'와 '적응력' 등이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로 꼽히고 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831곳의 기업 인사담당자들 중 24.8%가 신입사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꼽았다. 이어 ▲대인관계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23.5%)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고 ▲직무관련 전공지식(11.7%) ▲시간관리 및 근태 개념(10.2%) ▲회사에 대한 관심(8.7%) ▲인사성'(5.1%) 등이 뒤를 이었다.
H그룹의 인사 담당자 장진호 씨(33·남·가명)는 "여러 기업을 거쳐 경력을 쌓은 중고신입들은 업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반대로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채용 선호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 상 한번 뽑은 인력을 쉽게 내보낼 수 없어 기업 입장에서는 충성도가 높을 것 같은 신입사원을 뽑아 인재로 육성하는 게 장기적인 차원에선 더욱 유리하기 때문에 '신입다운 신입'을 점점 더 선호하는 추세다"고 강조했다.
S그룹의 인사 담당자로 재직 중인 이동규 씨(29·남·가명)는 "어차피 업무 역량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향상되기 마련이다"며 "AI 대전환 시대에서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정성적 요소'가 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것은 '얼마나 업무를 잘 처리하느냐'가 아니라 새로움과 열정, 그리고 장기적으로 회사를 위해 기여하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중고신입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는 것은 '기회비용' 측면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중고신입은 이전에 다닌 회사에서 체득한 업무 능력이 있지만 반대로 이직의 경험이 있어 그만큼 이직을 쉽게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시간이나 비용적 리스크가 더욱 크다는 설명이다. 김계수 세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지고 조직 슬림화가 불가피해지면서 기업들은 예전보다 더욱 신중하게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며 "불확실한 업황에서 중고신입은 이직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불확실성 요소로 치부되기 때문에 선호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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