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직접 한미 관세협상의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를 발표했다. 대통령실 주요 인사들은 이번 협상의 뒷얘기를 전하며 쉽지만은 않았던 협상이었다고 소회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9일 한미 관세 협상 초기 이재명 대통령이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는 사람이 이긴다"고 강조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현금 투자 연간 200억 달러 기준도 이 대통령이 "미국의 선의에 기댈 수 없다"며 명확히 할 것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19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에 출연해 한미 관세협상의 뒷얘기를 추가로 공개했다. 김어준의>
김 실장은 방송에서 "지난달 경주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여러 차례 미국을 다녀온 끝에 이견을 많이 좁힌 뒤 '거의 타결된 것 같다'고 보고했지만 이 대통령이 다시 기준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200억 달러 상한을 깔끔하게 얻지는 못했고 조금 더 위에 있었다"며 "이 정도면 실질적으로 200억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표현을 얻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2∼3일 지난 뒤 더 강경하게 깔끔한 200억 달러 아니면 못 하겠다고 하셨다"며 "'넘지 않을 것'이란 표현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선의를 기반으로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할 순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며 정치권 안팎의 압박과 정부를 향한 비난에도 이 대통령은 '국익 최우선'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김 실장은 마지막까지 양국이 맞서면서 경주APEC 정상회담 당일에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정관 산업장관이 정상회담을 몇 시간 앞두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에게 "그동안 많은 대화를 했는데 APEC은 APEC대로 잘 치르고 협상을 이어가자"는 문자를 보낸 뒤 물꼬가 트였다고 말했다.
당시 한미는 대미 투자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로 설정한다는 내용을 명시할지를 놓고 끝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30분 뒤 러트닉으로부터 '200억 달러를 확정하면 한국 입장에서는 충분하냐'는 답장이 왔고, 이를 토대로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30분∼1시간 만에 패키지의 내용을 완성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에서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도 관세협상으로 인해 무산될 뻔했다. 그는 8월 2일 미국이 보내온 문서에 대해 '올해가 을사년인 줄 알았다'고 언급하며 "완벽하게 미국 입장에서 쓰인 문서였다. '안 지켜지면 몰취한다'는 등 모든 표현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는 사람이 이긴다"며 협상을 지원했다.
핵 추진 잠수함이 팩트시트에 담기게 된 과정에 대해선 "8월 정상회담에서 80∼90%는 논의된 사안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으로 오해했다"며 "그래서 이 대통령이 더 명확히 하자는 의미로 오찬장에서 말했고 실무적으로 논의했던 내용이 있어 빨리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소에서 미 군함을 건조할 가능성을 언급한 조항에 대해선 "(미국 법을 고치지 않아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예외를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전체 협상 과정을 돌이켜보며 "이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의 역할을 보면서 행정가들이 대체할 수 없는 종합 판단과 담대함 등 정치인의 영역이 따로 있다고 느꼈다"며 "높은 곳에서 역사와 대화하는 정치의 긍정적 역할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만 "이제 역사의 한고비를 넘었고 앞으로도 '굽이굽이'가 있을 것"이라며 "개운하기보다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미투자 수익 5대 5 배분' 계속 문제 제기할 것"
김 실장은 지난 17일에는 SBS 8시 뉴스에 출연해 대미 투자에 따른 수익금을 한미가 5대 5로 나누도록 한 관세협상 결과에 대해 우리 입장에서는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익성 있는, 5대 5 배분 걱정이 들지 않을 사업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미국이 무리한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선 "김정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협의위원회와 사전 협의하기로 돼 있다. '상업적 합리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충분히 수익성 없는 사업은 막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김 실장은 협상 기간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놀랐던 뒷얘기도 소개했다. 그는 "8월 2일 토요일에 산업정책비서관이 미국에서 보낸 문서가 왔다고 하기에 어떤 내용이냐고 물으니 '을사늑약은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라고 했다"며 "문서 형식이나 내용 등이 오죽하면 그런 표현을 했겠느냐. 정말 황당무계한 내용 일색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8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긴장이 고조되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었다"며 "저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두 시간 정도 마지막 설전을 해보니 비로소 미국의 요구가 더 뚜렷해졌다"고 떠올리며 "우리가 통화스와프 등 외환 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미국도 굉장히 난감했고 한참동안 양국 간 대화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밤 이 대통령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잼프의 참모들 ep.6 케미폭발 대통령실 3실장> 이란 제목으로 영상에서도 김 정책실장은 "적어도 감내가 가능한 안을 위해 끝까지 사투했고 강경하게 마지막까지 대치했다. '더는 양보가 안 된다'는 우리의 선이 있었다"고 했다. 잼프의>
위성락 안보실장은 "주요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순간에 입장을 재고하고 상대를 배려해 서로가 물러섰다"며 협상이 극적 타결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첫째로 대통령이 대처를 잘했고, 참모들도 지혜를 모아 대처 방안을 잘 궁리했다"고 평가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정책·안보실장은 주로 진척이 있는 것에 대해 (내부) 설득을 하는 편이었고 제가 제일 완강한 입장에 서 있었다"며 "더 완강한 건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강경화 "트럼프, 정상회담 때 잠수함 관련 많은 것 질문"
강경화 주미대사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문제가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 명확히 논의됐다며 향후 절차적 이슈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강 대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하마스 정상회담 당시 한국의 잠수함 건조 계획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강 대사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두 차례의 한미 정상회담 현장에 함께하면서 한미 간 협의 타결을 지켜봤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안보 분야에서 핵잠 건조 추진, 한국 국방력 강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미국의 지지 확보, 미 군함의 국내 건조 가능성을 포함한 조선 협력 기반을 마련한 것에 대해 "전례 없는 굵직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미 외교의 최전선에서 힘들게 일궈낸 성과가 차질 없이 이행되도록 대사관의 각 부서 모든 직원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 당시 불발된 북미 대화와 관련해선 "미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는 가운데 우리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를 계속 확보해 나가겠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과 함께 피스메이커와 페이스메이커로서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여건이 성숙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강 대사는 "2차례의 한미정상회담 현장에 함께하면서 한미 간 협의 타결을 지켜봤다"며 "제가 목격한 양국 정상 간 돈독한 신뢰와 강력한 협력 의지는 계속되는 한미 관계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믿는다. 대미 외교의 최전선에서 힘들게 일궈낸 성과가 차질 없이 이행되도록 대사관의 각 부서 모든 직원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터프한 협상가' 김정관 "심장이 마르는 순간 있었다"
관세협상의 한 축을 담당하며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터프한 협상가'라는 극찬을 받은 김 장관은 이번 협상을 "보이지 않는 경제 전쟁의 한 장면"으로 규정하며 협상 도중 "심장이 마르는 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참석한 경주APEC CEO 서밋에서 특별연설을 하면서 "사실 내 사람들이 말하길 정관 킴은 매우 터프하다고 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좀 덜 유능한 사람이 (한국 대표로) 나오면 싶었는데, 그들(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발언했었다.
김 장관은 지난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에 출연해 "물리적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들도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충돌은 관세와 투자, 공급망을 둘러싼 경제 전쟁의 형태로 나타난다"며 "그 전선의 최전방에 서 있는 건 우리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김현정의>
그는 관세협상에 대해 "처음엔 개운했는데 지금은 좀 씁쓸하다"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생각하지만 협상 결과를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우리 국력의 한계를 실감한 측면도 있다"고 소회했다.
이어 "심장이 마르는 순간도 있었다"고 전한 김 장관은 "협상 이후에도 함부로 가지 않게끔 더 터프하게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문구를 대미투자 원칙 1조에 넣기 위해 미국 정부와 눈치싸움을 벌였다고 전한 김 장관은 협상 상대였던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에 대해 "진짜 터프한 협상가"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회의 중에 본인에게 불리한 흐름이 보인다 싶으면 표정 하나 안 바뀐 채 그냥 벌떡 일어나 '너와는 더 이상 얘기할 필요 없다'며 나가버리곤 했다"며 "제가 달려가 '일단 앉으시라'며 붙잡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러트닉 장관이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는 애국심과 열정만큼은 존경스럽다"며 "그런 상대를 상대로 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협상의 분수령이 된 대목으로 9월을 꼽았다. 당시 미국 측은 3500억 달러의 전액 현금투자를 고집했고, 한국은 외환시장 충격 등을 이유로 분납 구조와 통화스와프 등을 설득하고 있었다.
김 장관은 "그때는 우리 협상단이 미국에 가도 면담이 안 잡혔다. 실무자 미팅도 막히고, 제가 러트닉 장관에게 문자를 보내도 답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돌파구는 전혀 다른 곳에서 열렸다. 러트닉 장관은 과거 9·11 테러로 다니던 회사의 동료 직원 656명과 동생이 쌍둥이 빌딩에서 함께 근무하다 숨졌고 이후 매년 추모 예배를 드려왔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김 장관은 "협상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겠다. 그저 9·11 추모 예배에 참석하고 싶다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며칠째 침묵하던 러트닉 장관이 곧바로 'Yes, thank you(알았다. 고맙다)'라는 답장을 보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경주 APEC회의에서의 극적 타결 과정도 러트닉 상무장관과의 문자가 있었다. 회의 직전까지도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아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김 장관도 "당시만 해도 저희도 안 될 거라고 보고 있었다"고 전하며 APEC 개막을 앞둔 이른 아침, 러트닉 장관에게 "여기까지 잘 해왔으니 협상은 계속 이어가되, APEC 기간에는 양국이 동맹으로서의 체면을 지킬 수 있는 메시지를 내자"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 미국 측은 이 문자를 한국의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저는 어디까지나 외교적 메시지를 깔끔하게 관리하자는 뜻이었는데 미국은 '여기서 더 밀리면 협상이 깨진다'는 신호로 받아들인 것 같다"며 "그로부터 얼마 뒤 미국 측에서 한국 측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취지의 회신이 왔다"며 이후부터 협상에 진척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협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른 경기였다. 다음 세대 협상가는 더 평평한 운동장에서, 더 당당하게 협상할 수 있도록 산업과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17일 출연한 YTN 뉴스퀘어10에서도 "원래 2000억 달러 전체가 투자되기로 했던 걸 연간 한도를 둬야겠다고 했다"며 "우리 측은 '연간 200억 달러' 선을 지키지 않으면 협상은 깨진다라는 '딜 브레이커(deal-breaker)'로 뒀다"고 설명했다.
APEC 정상회담을 마친 후에는 러트닉 장관과 함께 경주에 있는 고깃집에서 자축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김 장관은 "미국에 있을 때 저희가 돼지고기 수육을 한번 먹었었는데 되게 잘 드시더라. 그래서 한국에 오면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고기를 먹자. 한국 사람들이 왜 소고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한우 맛을 한번 보여주겠다고 해서 한우 세트를 주문해서 같이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날이었고 협상도 끝나서 서로 기분이 좋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나보고 왜 터프한 협상가라고 했느냐는 것도 물어보기도 하면서 앞으로 더 잘해보자는 이야기들을 나눴다"고 소회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