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처리 속도…"제방에 12m 말뚝 대신 3m 말뚝 쓰고 예산 빼돌려"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필리핀에서 홍수 방지 사업 관련 비리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가운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행정부가 전직 의원·공무원 등을 처음 기소하면서 본격적인 사법처리에 나섰다.
19일(현지시간) AFP·블룸버그 통신과 인콰이어러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전날 필리핀 정부 반부패기구 옴부즈만사무소는 잘디 코 전 하원의원과 공공사업·고속도로부 공무원, 건설회사 직원들을 뇌물·공금 횡령·문서 위조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는 홍수 방지 사업 부패 조사를 위해 구성된 독립적인 특별 조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제시한 권고안에 따른 첫 기소 사례다.
코 전 의원은 자신이 소유한 건설회사 선웨스트를 통해 2억8천900만 필리핀페소(약 74억원) 규모의 필리핀 중부 오리엔탈민도로주 도로 제방 건설 등 사업을 엉터리로 시행하고 예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예로 설계상으로는 제방에 12m 길이의 말뚝을 설치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약 3m 길이의 짧은 말뚝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미코 클라바노 옴부즈만사무소 대변인은 "공공 예산의 목적은 지역사회를 홍수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지 공무원이나 민간 건설업체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 "이번 사건은 법원에 접수될 여러 사건 중 첫 번째"라면서 더 많은 사건이 예비 조사 또는 사실 확인 단계에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비리 의혹에 휘말린 뒤 의원직을 내놓고 해외 체류 중인 코 전 의원은 자신은 무죄이며 이 사업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마르코스 대통령이 홍수 방지 사업과 관련해 250억 필리핀페소(약 6천220억원)를 뇌물로 받았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터무니없는 선전이라고 일축했다.
태풍 등 홍수 피해가 잦은 필리핀은 지난 3년간 수천 건의 홍수 방지 사업에 약 5천450억 필리핀페소(약 13조5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다수 사업이 비정상적으로 시행돼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수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이 정부에서 제기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7월 연설에서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한 이후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이후 마르코스 대통령의 사촌인 마틴 로무알데스 하원의장과 프랜시스 에스쿠데로 상원의장이 부패 관련설에 잇따라 물러났다.
또 홍수 방지 사업의 주무 부처인 공공사업·고속도로부의 마누엘 보노안 장관이 지난 9월 초 물러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대통령 비서실장 격인 루커스 버사민 행정장관과 아메나 판간다만 예산부 장관이 비리 연관설에 사임했다.
이처럼 비리 의혹으로 흔들리는 마르코스 정권이 책임자 수사·처벌을 통해 민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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