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와 민간이 동시에 의료AI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현장에서 활용까지 이어지는 ‘도입 경로’는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신약개발·데이터 플랫폼·병원 AI까지 프로젝트가 급증하는 가운데 수가·규제·정확도라는 핵심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해 산업 확산이 구조적으로 멈춰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K-AI 신약개발 전임상·임상 모델 개발 사업’은 이런 병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4년 3개월간 371억원을 투입해 전임상·임상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AI 기반 임상시험 설계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환자군 선정부터 용량 설정, 실패 가능성 사전 예측까지 개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지만,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제도 기반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해당 사업은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강북삼성병원,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이 참여하는 다기관 체계로 운영된다. 연구진은 임상 데이터를 전임상 단계로 되돌리는 ‘역이행 연구’ 기반 AI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 제약사는 항암·대사질환 데이터 제공과 신규 멀티모달 데이터 구축을 맡으며 민·관 공동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민간에서도 데이터 기반 의료AI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의료AI 연합체 MAA(Medical AI Alliance)는 다음 달 통합 플랫폼 ‘라이프네트웍스’를 열어 내년까지 100만명 이상의 건강·생활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운동량·식사·체성분·유전체 데이터를 코인 기반으로 보상하며 수집하고, 뉴로-심볼릭 AI로 ‘환각(hallucination)’을 줄인 정제 데이터 구조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해외 시범 서비스만으로도 두 달 만에 30만명 이상의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확장성도 확인됐다.
병원 기반 AI 모델의 기술 수준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진은 수술 환자 8만여 명의 전자의무기록(EHR)을 분석해 16개 변수만으로 급성신손상·호흡부전·입원 중 사망을 동시에 예측하는 다중 머신러닝 모델을 개발했다. 예측 정확도(AUROC) 0.82~0.91로 기존 단일 모델이나 ASA 신체평가 지표 대비 일관되게 높은 성능을 보였고, 외부 병원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재현됐다.
문제는 기술 확장 속도를 의료 제도가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원가는 초음파·심전도·내시경 판독 AI를 도입해도 수가가 낮거나 아예 없어 AI를 쓸수록 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병원은 스마트병원·AI 기반 간호·행정 자동화·디지털 트윈까지 운영 효율화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상당수가 연구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의료를 산업이 아닌 규제 대상 중심으로 보는 시각도 한계로 지적된다. 김한수 이대목동병원 병원장은 “AI가 진료 전 과정을 도울 기술 수준에 도달했지만, 제도가 이를 의료현장에 실제로 도입할 수 있는 속도와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확도 문제 역시 산업 확산을 가로막는 또 다른 변수로 지목된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가 의학 드라마 ‘하우스’를 기반으로 최신 대형언어모델(LLM)의 희귀질환 진단 능력을 평가한 결과, 최고 성능 모델(제미나이 2.5 프로) 정확도는 38.6%에 그쳤다. GPT-4o 미니는 16.5% 수준이었다. 일반 질환에서는 일정 성능을 보였지만 희귀질환·자가면역질환·독성학 사례에서는 확신을 갖고 잘못된 결과를 제시해 임상 적용에는 여전히 위험이 따른다는 평가다.
모델별 성능 편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이고 증상이 뚜렷한 수막염·심근경색·폐색전증 등은 비교적 정확하게 분류했지만, 신경낭미충증·에르드하임-체스터병 같은 희귀질환과 다계통 자가면역질환에서는 오진율이 높았다. 노출 이력과 임상 증상을 함께 해석해야 하는 독성학 사례에서도 취약점이 드러났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AI 기술은 이미 일부 임상 업무를 대체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수가·규제·정확도라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한국 의료AI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며 “기술뿐 아니라 기술이 적용되는 환경 개선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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