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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과잉 시대의 생존전략은?
일본은 1980~90년대 석유화학 산업 둔화에 대응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합작 투자로 업체 수를 축소하고, 2000년대 이후 전자소재·헬스케어 등 고부가 사업으로 전환했다. 2010년 이후 ‘1개 현 1개 석유화학사’ 원칙에 따라 노후설비 152만t을 폐쇄하고, 2028년까지 220만톤(t) 추가 감축을 계획 중이다. 이로 인해 주요 업체들의 스페셜티 및 비화학 매출 비중은 60%를 넘고, 경기 침체기에도 5% 이상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범용제품(PE, PP 등) 비중이 50~60%로 높고, 스페셜티 진입장벽과 연구개발(R&D) 한계로 구조전환이 더디다. 일본이 내수 중심 구조로 전환한 반면 한국은 중국 수출 확대로 생산능력(CAPA)를 키워 왔으나, 최근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국 공급 확대 등으로 수익성이 급락하며 구조조정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정부는 올해 8월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향을 발표하고, 10개 주요 업체가 에틸렌 270만~370만t(18~25%) 설비 감축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업체별 감축 규모, 재무여력, 설비 경쟁력 차이 등으로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 나프타분해시설(NCC) 자산가치 하락으로 단순 매각이 어렵고, 산업단지 내 설비 통합·감축이 이상적이나 인프라 공유 등 현실적 제약이 크다. 국내 주요 제품의 가동률을 분석한 결과, 호황기(2017~2018년) 대비 불황기(2019~2025년 상반기) 가동률이 10%p 이상 하락하고 85% 미만인 제품이 조정 대상이며, 전체 생산능력(9100만t)의 약 18%(1700만t) 축소가 필요하다고 분석됐다. 에틸렌은 약 240만t(13백만t의 18%) 감축이 필요해 정부 계획보다 적으나 이는 최소치로 향후 공급과잉 심화 시 추가 축소가 불가피하다.
향후 신용도 평가는 구조조정 실행력, 사업재편 성과, 정부의 지원 및 사후관리 계획 등을 종합 반영할 예정이다. 정부는 정책기금, 유동화보증(P-CBO) 발행, 정책금융 여신확대 등 금융지원과 함께 재무비율 한시적 예외, 사후관리 가이드라인 제시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
◇ 국내 정유사의 기회와 리스크 요인
수직통합을 포함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경우 국내 석유화학산업 내 올레핀 제품 시장에서 정유사의 영향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구조조정 본격화 이후 국내 석유화학설비의 수직통합 및 수평통합, 노후 설비 폐쇄 등 다양한 구조조정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가운데 정유사의 효율성이 높은 석유화학설비는 유지하는 대신에 정유사가 석유화학사의 노후설비를 부담하게 되는 수직통합의 가능성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참여로 정유사는 국내 석유화학시장 내 올레핀 제품 생산능력 및 점유율을 확대하고 장기 에너지 전환 대응력을 제고할 수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보유 설비와 유사한 규모의 NCC 설비를 취득하는 경우 단기간에 석유화학부문의 생산능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정유사에게 NCC는 납사를 보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설비라는 점에서 에너지 전환 대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유사를 포함한 수직통합이 진행된다면 국내 정유사는 단기적으로 석유화학사의 NCC 매입, 신규 현금 출자 등으로 인한 투자부담이 예상된다. 국내 정유사들의 차입규모가 과거 대비 상승한 상황으로 수직통합 과정에서의 자금소요가 상당한 재무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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