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신청 사건에서 승소했다.
이로써 13년간 이어진 국제소송전은 한국 정부의 승리로 마무리 됐다.
당초 ICSID는 한국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에 해당하는 2억1천65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으나 론스타와 한국 정부는 각각 2023년 7월과 9월 판정 취소 신청을 했다. 이후 지난해 서면 공방 및 지난 1월 구술심리 등을 거쳐 ICSID는 한국 정부의 승소 결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현재 환율 기준 약 4천억원 규모의 정부 배상 책임은 모두 소급해 소멸됐으며 한국 정부가 그간 취소 절차에서 지출한 소송 비용 약 73억원도 론스타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번 승소와 관련해 '치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 판정 취소 신청을 주도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취소 가능성이 낮다며 반대한 바 있다. 이에 한 전 대표와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김민석 "국민세금 지킨 성과" 정성호 "직원들 혼신 힘 다해"
대통령실 "기존 판정 오류 바로잡혀…환영"
김민석 국무총리는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의 승소 결정을 발표했다.
김 총리는 "정부는 오늘 오후 3시22분경 미국 워싱턴D.C. 소재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ISDS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받았다"며 "이로써 원 판정에서 인정된 약 4000억원 규모의 정부 배상책임은 모두 소급해 소멸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취소위원회는 론스타에 한국 정부가 그간 취소절차에서 지출한 소송 비용 합계 약 73억원을 30일 내에 지급하라는 결정도 내렸다.
김 총리는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이며 대한민국의 금융감독 주권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그동안 법무부를 중심으로 정부 관련 부처가 적극적으로 소송에 대응한 결과"라고 했다.
이어 "새정부 출범 이후 APEC의 성공적 개최, 미중일 정상외교, 관세협상 타결에 이어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이며, 국민들께서 뜻을 모아주신 덕분에 국운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같은 자리에서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이렇게 된 거 아니냐는 말씀도 하겠지만 어느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란 이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부재한 상황에서 법무부 담당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장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그들(법무부 직원들)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ICSID에 가서 구술 변론을 했고 그런 성과들이 모여 이번에 좋은 결과를 냈다"며 "법무부, 금융감독원, 관계부처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중재 절차 과정에서 적법 절차 위반이 상당히 중대하게 발생했다는 점이 취소위가 한국 정부의 취소 신청을 받아들인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이번 승소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8일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정부에 전혀 위법 행위가 없었음에도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기존 중재판정의 오류가 바로 잡혔다"며 "이에 환영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강 대변인은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성해 사건 대응에 최선을 다해왔다"며 "그간의 노력이 좋은 성과로 귀결된 것을 반긴다"고 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주신 정부 관계자, 소송 대리인, 그리고 정부를 믿고 응원해준 국민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ISDS 판정 취소소송 승소…'13년 국제소송전' 마침표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분쟁은 2003년 시작됐다. 론스타는 2003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고 있던 외환은행의 지분 51.02%를 1조3천834억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놓고 잡음이 생겼다. 당시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는데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과 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외환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8% 밑으로 떨어져 부실이 예상되자 특별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론스타의 산업자본 요건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고, BIS 비율이 고의로 낮게 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005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관여했던 경제관료와 은행 경영진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론스타가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려고 은행법을 확대해석하고, 은행 주주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헐값'을 받고 떠넘겼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론스타의 인수를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 수사 정국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론스타는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천억원대의 매각 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며 이를 보류했다.
결국 2008년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해 매각은 무산됐고, 론스타는 2012년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천157억원에 넘겼다.
이후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HSBC와의 매각에 실패해 손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46억7천950만달러(약 6조8천억원)에 달했다.
ICSID는 2012년 12월 론스타 제기 사건을 등록했고, ICSID는 2022년 8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천65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론스타 측은 배상 금액이 충분치 않다며 2023년 7월 판정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정부도 판정부의 월권,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을 이유로 같은 해 9월 판정 취소와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양측의 판정 취소 신청을 받은 ICSID는 2년여간 숙고 끝에 이날 한국 정부 승소 판정을 내리면서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국제소송은 13년 만에 마침내 마무리됐다.
론스타 "실망…새로운 소송 제기 검토"
사모펀드 론스타는 ICSID가 기존 중재판정부의 승소 판정을 취소한 데 대해 추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대변인 성명에서 "사건을 다시 새로운 재판부(Tribunal)에 제기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새로운 재판부도 한국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론스타에 손해액 전액을 배상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이번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위원회의 결정에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소위원회는 절차적 근거를 들어 기존 판정을 취소했다. 이 결정에도, 론스타가 수년간 노력해온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한국 규제기관이 막아서고 부당하게 간섭했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론스타 소송 트집 잡은 민주당, 국민께 사과하라"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번 승소 결정을 놓고 '치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23년 9월 윤석열 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판정 취소 신청을 주도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햄 대표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 정권은 뒤늦게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라"고 날을 세웠다.
한 전 대표는 "제가 법무부 장관 당시 추진했을 때 민주당은 승소 가능성 등을 트집 잡으며 강력 반대했었다"면서 "민주당은 당시 이 소송을 트집 잡으며 반대한 것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고 지적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국 한동훈의 완승"이라며 "4000억의 국고 손실도 막고 론스타에 소송비용도 받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같은 법무부 장관인데 누구는 공공의 이익 7800억원을 사기꾼들에게 안겨 주고, 누구는 4000억원의 국고손실을 막았다"며 "극적으로 대비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된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을 겨냥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그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항소해봤자 질 것이 뻔하다며, 결국 소송비용과 이자비용만 늘어날 것이라고 항소 포기를 주장했었다"면서 "포기하라고 외치던 민주당 측 송모 변호사의 눈부신 활약이 기억난다"고 꼬집었다.
해당 인물은 송기호 변호사다. 한 전 대표가 판정 취소 신청을 추진하자 송 변호사는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적 결론이 판정으로 나올 가능성은 제로"라고 주장한 바 있다.
與 "기적같은 결과…명백한 이재명 정부 성과" 박지원 "한동훈도 李정부도 다 잘했다"
민주당은 이번 승소에 환영의 입장을 내며 사과 요구에는 억지 프레임이라고 반박했다.
정청래 대표는 18일 대구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이 승소했다는 기쁜 소식, 4천억원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적인 성과와 더욱 빛나게 된 대한민국을 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전현희 최고위원도 "배상금 0원이라는 기적 같은 결과를 이끌어낸 정부 당국과 실무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론스타 측의 2차 중재 가능성이 남아있다. 남은 후속 절차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지난 9월 평당원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박지원 최고위원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관세 협상과 APEC 정상 외교 성과에 이어서 또 하나의 대외적 쾌거"라며 "판정이 이렇게 통째로 취소되는 사례는 흔치가 않은데 국고를 지켜낸 관계 공무원들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과 한동훈 전 대표가 민주당을 향해 사과를 요구한 데 대해선 "억지"라며 역공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서 "법무부에서 국제법무국장을 중심으로 10년 넘게 소송을 했던 결과"라며 "'우리 정부가 잘했다'라고 하면 될 것을 이렇게 할 필요까지 있나 싶다"고 말했다.
강득구 의원은 페이스북에 "보수 진영은 또 '숟가락 얹기다', '윤 정부 덕이다'라며 억지 프레임을 들고나오겠다"면서 "이번만큼은 그 어떤 프레임으로도 덮을 수 없는 명백한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지원 의원(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론스타는 전 정부도 잘했고 한동훈도 잘했고 현 정부도 잘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잘한 건 잘했다고 또 한번 얘기해 줘야지요"라며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그때 법무장관으로서 판단을 잘 한 것이다. 그리고 현 정부도 잘 이끌었기 때문에 4천억을 다 우리가 찾아냈다. 다 돌려받게 됐다"고 말했다.
국힘 "與, 론스타 승소 가능성 제로라더니 생색…대장동 7800억 환수해야"
국민의힘도 이번 승소와 관련해 민주당을 겨냥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은 그동안 '승소 가능성 없다', 소송비만 늘어난다'라며 소송을 추진했던 지난 정부의 대응을 거세게 비난했다. 현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취소 절차에서 한국 정부가 이길 가능성은 제로'라며 지난 정부를 공격했다"라면서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성과라고 포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라고 말하며 지난 정부의 노력을 지우고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라면서 "민주당의 태도는 뻔뻔하다 못해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번 승리는 대한민국이 법리에 근거해 끝까지 싸워 얻어낸 성과"라면서 "민주당이 하라는 대로 했으면 오늘 대한민국은 4000억원을 론스타에 지급했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정부가 잘했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 정부는 원칙대로 끝까지 다퉈 4000억원을 지킨 반면, 대장동 사건에서는 정권의 압력으로 항소가 포기돼 7800억원의 공공이익이 사라졌다"라면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생색을 낼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4000억원의 배상금 면제가 금융 주권을 지켜낸 중요한 이정표임은 분명하지만 이 성과를 마치 이재명 정부의 치적으로 포장하려는 모습은 민망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면서 "민주당이 할 일은 정쟁을 위해 국익을 의심했던 태도에 대해 국민 앞에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김민석 총리가 진정으로 국민 세금을 지키고 국가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부당이득 7800억원 환수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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