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의 북토피아}삶을 이해하는 오래된 베스트셀러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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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북토피아}삶을 이해하는 오래된 베스트셀러 '스토너'

뉴스컬처 2025-11-19 10:53: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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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북토피아 

스토너 /존월리엄스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존 윌리엄스(1922∼1994)의 소설 ‘스토너’는 신기한 책이다. 출간한지 60년(1965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잘팔리고 심지어 베스트셀러 순위에 자주 오르내린다. 자극적인 내용도 없고 어찌보면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한사람의 일생을 조용히 그려내고 있는데도 읽는 사람들마다 거대한 감동을 준다. 
우리가 사는 삶은 누구나 일직선이다. 출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 그 사이에 수많은 층위가 겹치면서 인간의 삶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인생은 뜨겁게 타오르지 않는다.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은 채 낮은 불씨로 오래 타다가, 조용히 꺼져간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바로 이 지점을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로 존엄하기 그지 없다. 화려한 사건도 없고 조용하고 일상적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둑한 강의실에 앉아 스토너의 숨결을 따라가게 된다.
윌리엄 스토너는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대학에서 문학을 접하고 삶의 궤도를 바꾼다. 그러나 그 선택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학문의 기쁨은 미약한 불빛처럼 그를 지탱하지만, 결혼 생활은 서서히 무너지고, 아이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직장에서의 갈등은 그를 외롭게 몰아넣는다. 그럼에도 스토너는 자신이 택한 자리에서 조용한 충성심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실패의 언덕을 걸으면서도 스스로의 인생을 배반하지 않는다.
‘스토너’가 독자에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지점은 바로 여기 있다. 스토너의 삶을 지탱하는 힘은 ‘대단함’이 아니라 ‘묵묵함’이다. 시대의 소음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의 태도는 우리가 잊고 살아온 질문을 다시 던진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제대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 스토너는 그 어떤 성취도 이루지 못한 듯 보이지만, 문학을 향한 그의 사랑과 학생들에게 보낸 단단한 눈빛은 삶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진정한 열정을 보여준다.
특히 소설 후반부, 스토너가 병상에 누워 자신의 삶을 천천히 되짚는 장면은 잔잔한 파문처럼 오래 남는다. 그는 거대한 후회도, 뚜렷한 승리도 없었음을 깨닫는다. 대신 자신의 손을 스친 책들과, 강의실의 먼지 냄새, 학생들의 흔들리던 눈빛을 떠올린다. 그 모든 것은 세상에게는 미미한 것들이지만, 스토너에게는 사막 한가운데 놓인 작은 우물 같은 빛이었다.
스토너의 삶에서 우리는 세가지 면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학문(문학)을 향한 태도다. 그는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그저 묵묵하게 학문으로 나가는 순수한 열정가다. 책과 텍스트를 향한 순수한 충실성이 전부다. 어찌보면 답답하기 이를데 없지만 정치를 하거나 어느 편에 서지 않는다. 두 번째는 가부장적인 삶의 태도가 빚어낸 불화다. 그는 결혼이나 가정을 이루는 것에 서투른 인물이다. 배려하는 마음은 커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결국은 아내와 사이가 차가워지고 자식과는 거리가 생긴다.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의 답답함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실상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셋째, 제도 내부의 갈등과 권력의 은밀한 운영. 대학이라는 배경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규범·계급·적대가 교차하는 장치로서, 스토너의 인격과 직업적 자리가 깎이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토너가 멘토로 삶은 교수는 아처 슬론이다.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학생들을 대할 때 왠지 모를 거리를 둔다. 말도 없고 늘 우울한 표정이다. 패기 왕성하고 젊었을 때 스토너는 왜 슬론 교수가 우울해 보이고 점점 말이 없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생의 시간을 견디면서 늙은 스토너는 자신의 멘토 교수를 차츰 이해한다. 자신이 그런 모습으로 교정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세 가지 면을 뒤틀면 얼마든지 파격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지만 존 윌리엄스는 화려한 수사나 과도한 감정을 한마디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흙길을 걷듯, 서늘하고 조용한 문장들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절제로 인해 독자는 더욱 깊이 스토너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소설의 마감 페이지는 거창한 교훈 대신, “그래도 살아냈다”는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스토너’는 “소리 없이 흔들리는 삶의 골짜기에서 만나는 작은 불빛” 같은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잊힌 인생일지라도, 언젠가 한 사람의 마음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눈부신 업적도, 완벽한 사랑도 없었지만, 스토너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하루
“조용해도, 흔들려도 괜찮다. 당신이 당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면.”
이 소설은 ‘성공 신화’에 대한 역설적 고백이다. 현대 사회가 내세우는 성취의 기준으로는 스토너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견딤’의 미학을 통해 다른 종류의 위엄을 산출한다. 우리가 흔히 ‘패배’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재료일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조용히 설득한다.
이 책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성공’과 ‘의미’의 비례를 전제로 한 사회에 대해, 존 월리엄스는 다른 잣대를 건넨다. 인간의 품위는 외형적 성취로만 측정되지 않으며, 자기와의 성실한 약속, 일상의 책임,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받기를 원하는 사회에서 스토너가 각광받는 것은 역설적이다. 세상 조용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울리는 잔향이 남는 책. 
스토너가 택한 삶의 방식은 시대의 대세와 무관하게, 어느 개인의 윤리적 표정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걸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이유는 결국 타인의 내면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다—조용히, 그러나 오래.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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