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지 않기로 결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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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지 않기로 결심할 때

나만아는상담소 2025-11-19 09:52:01 신고

‘착한 여자’라는 지독한 감옥에서 걸어 나오는 법

당신은 아마 평생을 ‘착한 딸’, ‘배려심 깊은 친구’, ‘헌신적인 연인’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분을 날씨처럼 살피고, 행여나 누군가 불편해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당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필요를 언제나 우선순위에 두는 삶. 그것이 미덕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살면 사랑받을 줄 알았다.

특히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당신의 이 ‘기쁘게 하기(People Pleasing)’ 본능은 정점을 찍었다. 그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곧 당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이었기에, 당신은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그의 비위를 맞췄다. 당신은 그에게 완벽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자였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깨달았다. 당신의 그 헌신적인 노력이, 사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음을. 당신이 착하게 굴수록 그는 당신을 더 만만하게 여겼고, 당신이 배려할수록 그는 더 뻔뻔하게 권리를 주장했음을.

이제 당신은 선언해야 한다. 더 이상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이것은 단순히 “이제 좀 이기적으로 살래” 정도의 가벼운 다짐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이 평생 입고 있던, 살갗처럼 달라붙은 ‘착한 사람’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세상에 맞서는 ‘존재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조용하지만,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다. 남을 기쁘게 하는 삶을 멈출 때, 비로소 당신을 기쁘게 하는 삶이 시작된다.


당신의 친절은 ‘뇌물’이었다

우선 아픈 곳을 찔러야겠다. 당신은 왜 그토록 타인을 기쁘게 하려 애썼는가? 당신이 천사라서? 타고난 성품이 너무나 이타적이라서? 물론 당신은 선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과도한 친절의 기저에는, 사실 아주 깊고 오래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당신에게 타인을 기쁘게 하는 행위는, 사랑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버림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어린 시절, 혹은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당신은 학습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만, 내가 저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줘야만 나는 안전하다’라고.

그러므로 당신의 친절은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안전’을 구매하기 위해 타인에게 지불한 ‘뇌물’이었다. “내 의견을 죽일게, 그러니 나를 미워하지 마.”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러니 나를 떠나지 마.”

이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전문 용어로는 이것을 ‘포닝(Fawning, 비위 맞추기)’ 반응이라고 한다. 투쟁(Fight)하거나 도주(Flight)할 수 없을 때, 포식자에게 납작 엎드려 애교를 부림으로써 공격을 피하는 본능이다.

하지만 이제 위기 상황은 끝났다. 당신은 안전하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뇌물을 갖다 바친다면, 그것은 호구가 되는 지름길일 뿐이다.

당신의 친절이 가치 있으려면, 그것이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넘치는 ‘여유’에서 나와야 한다. 뇌물로서의 친절을 멈춰라. 당신은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타인의 실망을 견디는 근육을 키워라

당신이 남을 기쁘게 하기를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망할 것이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나, 당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겼던 사람들은 분노할 것이다. “너 변했어.”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때 당신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을 것이다. 평생을 남의 기분을 맞춰온 당신에게,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공포일 테니까.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다. 당신이 넘어야 할 산은. 당신은 타인의 실망을 견뎌야 한다. 그들의 찌푸린 미간, 그들의 서운한 목소리, 그들이 뒤에서 할지도 모르는 뒷담화. 이 모든 것을 묵묵히 견뎌내는 ‘담력’을 키워야 한다.

기억하라. 당신이 거절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떠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당신을 좋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이 제공하는 ‘편의’와 ‘서비스’를 좋아했을 뿐이다. 자판기에서 음료수가 안 나오면 발로 차는 사람을 보라. 그가 자판기를 사랑해서 차는 것인가? 아니다. 내 돈 먹고 물건을 안 뱉어내니까 화를 내는 것이다.

당신이 기능을 멈췄을 때 화를 내는 사람들은, 당신을 인격체가 아닌 자판기로 여겼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들의 실망은 당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당신이 비로소 ‘인간’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들의 실망을 훈장처럼 달아라.


‘나쁜 년’이 되기를 자처하라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혹은 그 이후의 삶에서 당신은 필연적으로 ‘나쁜 년(혹은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족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때, 친구의 징징거림을 차단할 때, 직장에서 부당한 업무를 거부할 때. 세상은 당신에게 ‘이기적이다’, ‘독하다’, ‘정이 없다’라는 프레임을 씌울 것이다.

그 프레임을 거부하지 마라. 오히려 기꺼이 뒤집어써라. “그래, 나 이기적이야. 그래서 뭐?”

착한 여자(Good Girl)는 천국에 갈지 모르지만, 나쁜 여자(Bad Bitch)는 어디든 간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나쁜 여자란 남을 해치는 악인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과 권리를 타인의 기분보다 우위에 두는, 주체적인 여성을 뜻한다.

당신의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당신은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타인의 인생이라는 영화에 ‘착한 조연’으로 출연하느라 내 영화를 망친다.

타인의 영화에서 ‘빌런(악당)’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군가의 인생에서 당신이 나쁜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인생을 아주 충실하게 지켜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가는, 나 자신에게 최악의 사람이 된다.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남에게 욕을 좀 먹더라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칭찬은 듣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진 병자가 될 것인가.


불편한 침묵을 즐겨라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대화 중에 흐르는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내 탓인 것 같고, 상대가 지루해하면 내가 재미없어서인 것 같아 안절부절못한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던지고, 과장되게 웃고, 광대 노릇을 자처한다.

이제 그 짓을 멈춰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침묵이 흐른다면, 그 침묵을 그냥 내버려 둬라. 그 침묵의 무게를 당신 혼자 짊어질 필요가 없다.

대화는 탁구와 같다. 공이 넘어갔으면 상대가 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당신이 네트를 넘어가서 공을 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대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면? 내버려 둬라.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은 당신의 의무가 아니다. 그는 성인이고,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당신이 옆에서 알랑방귀를 뀌며 기분을 맞춰주는 것은, 그를 감정 조절 못 하는 어린애 취급하는 것이다.

그저 가만히 있어라. 불편한 공기 속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법을 배워라. 당신이 애쓰지 않아도, 당신이 웃기지 않아도, 당신이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어도 된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라. 그 정적 속에서 당신의 자존감은 단단해진다.


당신의 기쁨이 나침반이다

남을 기쁘게 하기를 멈췄다면, 이제 그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할까? 당연히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고 살아온 당신은,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점심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아무거나, 너 좋은 거”라고 대답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면, 이제는 멈춰 서서 당신의 위장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금 내 몸이 진짜 원하는 게 뭐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라. 남들이 다 좋다는 맛집이 아니라, 내 입맛에 맞는 허름한 식당을 찾아가라. 남들이 유행이라고 하는 옷이 아니라, 내 몸에 편안한 옷을 입어라.

누군가가 만나자고 할 때, “미안,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라고 말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려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기쁘게 할 때마다, 당신의 뇌는 새로운 회로를 만든다. ‘아, 내 기분도 중요하구나.’ ‘나는 타인의 도구가 아니라, 쾌락을 느낄 자격이 있는 주체구나.’

이 사소한 기쁨들이 쌓여 당신의 인생을 채울 때, 당신은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에 목매지 않게 된다. 내 안의 컵이 이미 내 기쁨으로 찰랑거리는데, 굳이 남에게 물을 구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을 실망시켜라. 그리고 당신을 만족시켜라. 그것이 당신이 이 생에서 완수해야 할 유일한 의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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