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수와 사이클론, 해수면 상승...민주화시위로 들썩이는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는 지금 두 개의 거대한 파도가 충돌하는 세계적 위기의 중심에 서 있다. 하나는 홍수와 사이클론, 해수면 상승으로 대표되는 기후재난이며 다른 하나는 장기집권 체제에 맞선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다.
이 두 가지 위기는 서로 다른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하게 맞물려 방글라데시 사회의 균열을 가속시키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이 나라를 ‘21세기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로 규정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충격은 단순한 환경 이슈를 넘어 국토와 경제, 사회 안정까지 무너뜨리는 총체적 재난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여기에 권위주의 정치가 결합하면서 방글라데시는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무너진 제방과 침식된 해안선, 소금기가 스며든 논을 떠나는 주민들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는 방글라데시의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국토의 절반가량이 해수면에서 1m 이하에 위치한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후 난민이 증가하는 국가이며, 세계은행은 “2050년까지 최대 1,300만 명이 기후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바닷물 침투로 농경지가 불모지로 변하고, 삼각주 지역은 해마다 홍수 범위가 늘어나며 마을 수십 곳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부와 농민들이 생계를 잃어 도시로 유입되면서 다카·치타공 등 대도시의 슬럼 밀집 지역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민주화 운동의 또 다른 축은 장기집권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2009년부터 15년 가까이 권력을 유지해왔지만 야당 탄압, 언론 통제, 부패, 경찰·군의 무력 진압 의혹이 반복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부 불신이 폭발했다.
특히 2024년 총선에서 야당 후보들이 대거 구속되거나 출마조차 하지 못해 국제사회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은 선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직후 대학가와 대도시 중심으로 민주화 시위가 격렬하게 확산되었고 정부는 인터넷 차단, SNS 봉쇄, 언론 폐쇄, 시위대 체포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수백 명의 사망자와 수만 명의 구금이 이어지면서 방글라데시는 사실상 준위기 상태로 진입했다.
이 두 위기는 별개가 아니라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로 연결되어 있다. 기후재난이 농업 기반 경제를 붕괴시키면서 도시 실업률과 빈곤이 급격히 상승했고 이는 청년층 분노를 키우며 민주화 운동의 동력을 제공했다.
▲방글라데시는 부패한 행정 시스템은 기후대응 예산 유용, 해안 방벽 부실 공사, 재난 대비 시스템 붕괴 같은 문제를 낳아 기후 피해를 더 키우고 있다.
반대로 정치적 불안정과 부패한 행정 시스템은 기후대응 예산 유용, 해안 방벽 부실 공사, 재난 대비 시스템 붕괴 같은 문제를 낳아 기후 피해를 더 키웠다.
이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사회는 기후재난→경제 붕괴→청년 실업 증가→정치적 분노→대규모 시위→국가 불안정 심화→기후 대응력 약화→재난 증가라는 악순환에 갇히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국제정치의 파장까지 불러왔다. 중국은 파이라·콕스바자르 항만 개발을 통해 인도양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인도는 전통적으로 친인도 성향인 하시나 정부를 지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인권탄압을 문제 삼아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방글라데시가 단순한 국내 문제가 아니라 인도양 전략의 핵심 지역이자 강대국 경쟁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의미다.
기후 적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는 해안 방벽 확장, 홍수 조기경보 시스템 개선, 방글라데시형 ‘기후 스마트 농업’ 도입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제한된 재정과 부패, 정치적 불안정으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민주주의 회복 역시 장기 과제가 되어버렸다.
▲ 2024년 총선에서 야당 후보들이 대거 구속되거나 출마조차 하지 못해 국제사회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은 선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민사회는 총선 재실시와 권력 분립 회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치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지금 두 갈래의 거대한 재난 속에서 방향을 잃은 나라처럼 흔들리고 있다. 하나는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적 생존을 위협하는 민주주의의 후퇴다. 이 두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방글라데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기후·정치 복합위기를 먼저 맞닥뜨린 국가의 사례라는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할 과제다.
기후재난과 권위주의 정치가 동시에 심화되는 나라가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제사회 전체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방글라데시는 이미 그 답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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