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금융 기술의 혁신 속에서 '토큰'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닙니다. 특히 부동산, 미술품 등 실물 자산을 소액으로 나눠 투자하는 조각투자의 법제화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증권사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이번 기획시리즈는 토큰의 정의부터 국내외 동향, 법제화 과정, 미래 전망까지 심도있게 다룹니다. 총 6편에 걸쳐 토큰의 모든 것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증권사와 개인 투자자의 미래 전략 수립에 실질적인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2026년 3분기, 미국 나스닥이 애플·테슬라 같은 전통 주식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증권'으로 전환해 상시 거래하는 시스템을 본격 가동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나스닥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청한 토큰증권 거래 플랫폼이 승인 절차를 밟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에 거대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 일본, 유럽은 이미 법제화 경쟁에 속도를 내며 2030년까지 16조달러(약 2경128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토큰증권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한국은 국회 법안 폐기로 '규제 샌드박스'에 갇혀 국제 흐름에서 한발 뒤처진 상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토큰으로 바뀐 자산 규모가 2022년 2100억달러에서 2030년 16조달러(약 2경1280조원)로 76배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맞먹는 규모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 토큰증권 시장이 2024년 34조원(GDP 대비 1.5%)에서 2030년 367조원(GDP 대비 14.5%)으로 연평균 49%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6년 만에 10배 이상 커지는 셈이다. 이처럼 엄청난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들이 앞다퉈 움직이고 있다.
가장 빠른 나라는 미국이다. SEC는 디지털 자산이 언제 증권으로 취급되는지 기준을 명확히 하고, 대부분의 토큰을 과도한 규제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새 규제 틀을 짰다. 이런 SEC의 방침은 나스닥의 토큰증권 도입 신청과 맞물려 있다. 나스닥은 SEC에 낸 문서에서 "토큰으로 바뀐 주식도 기존 주식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중앙 청산 시스템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벌써 성공 사례도 나왔다. 블록체인 기업 블록스택은 2019년 미국 연방 증권법의 'Reg A+' 조항을 활용해 SEC로부터 합법적인 토큰 판매를 처음으로 승인받았다. 이를 통해 약 2300만달러(약 307억원)를 모으며 토큰증권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규제가 정비되자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도 움직였다. 골드만삭스는 2023년 '골드만삭스 디지털 자산 플랫폼'을 내놓으며 토큰증권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 플랫폼으로 홍콩은 1억2000만달러 규모의 녹색채권을 토큰으로 발행·판매했다.
유럽도 빠르게 따라붙었다. 유럽투자은행(EIB)은 골드만삭스의 플랫폼을 활용해 기존에 5영업일(T+5) 걸리던 채권 발행 결제를 당일 결제(T+0)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EIB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1년 4월엔 처음으로 전통적인 '공동주관사단' 방식을 활용한 블록체인 채권 발행에도 성공했다.
미국과 유럽이 제도를 만드는 동안 일본은 한발 앞서 시장을 키웠다. 일본은 2020년 5월 개정 금융상품거래법을 시행하며 금융기관의 토큰증권 취급을 허용했다. 이후 SBI증권을 중심으로 시장이 빠르게 커졌다. SBI그룹은 2020년 10월 자회사인 SBI e-스포츠의 보통주 1000주를 토큰으로 발행하며 일본 첫 토큰증권 사례를 만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마루이그룹, 미즈호은행 같은 대형 금융사들이 채권을 토큰증권 형태로 내놓으며 시장이 확대됐다.
그 결과 일본의 토큰증권 시장은 누적 발행 규모가 2200억엔을 넘어섰다. 거의 매일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며 하루 평균 거래액은 150만~200만엔 정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참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2026년까지 일본의 토큰증권 발행 규모가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선진국들이 제도를 다듬고 시장을 키우는 동안 한국은 법을 만드는 단계에서 좌초했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2월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했지만 관련 법안은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지난해 9월 22대 국회에서 토큰증권 법 제정 논의가 다시 시작됐지만, 전면 허용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토큰증권은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받는 일부 조각투자 업체가 내놓는 투자상품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 제정이 늦어지자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조각투자 플랫폼 카사와 바이셀스탠다드는 싱가포르로 진출했다. 바이셀스탠다드는 2024년 4월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고 규제를 준수하는 통합 인프라를 구축했다.
바이셀스탠다드 관계자는 "K-팝, 웹툰 같은 K-콘텐츠에 해외 투자자가 투자할 수 있도록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을 결합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며 "토큰으로 바꿀 수 있는 K-콘텐츠 자산 규모가 300억달러에 이르고, 전 세계 2억2500만명의 한류 팬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적극적인 투자 참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 제정은 늦어지고 있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발 빠르게 준비에 나섰다. 일부 증권사는 지난해 10월을 목표로 토큰증권 발행 플랫폼 구축을 진행했으며 여러 증권사가 다양한 협의체를 꾸려 컨설팅과 플랫폼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권도 분주하다. 주요 은행들은 토큰증권 계좌 관리 기반으로서 역할을 고민하면서 규제 샌드박스, 실증사업 참여 준비 등으로 토큰증권 제도화에 대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법 제정이 늦어지는 게 단순히 시장 형성이 늦춰지는 것을 넘어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홍성민 플립 토큰증권 유튜버는 'STO 써밋 2025'에서 "전 세계가 토큰화되는데 우리나라가 못 따라가면 유동성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2030년 글로벌 토큰증권 시장 규모가 5000~6000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 물결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큰증권은 더 이상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367조원으로 커질 국내 시장을 제대로 키우려면 신속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한목소리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