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성 증거는 무효”… ICSID, 한국 정부 손 들어줘
김민석 국무총리는 18일 정부의 오랜 숙원이었던 미국계 사모펀드(PEF) 론스타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 사건에서 최종 승소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결정으로 2022년 중재 판정에서 인정됐던 2억 1,650만 달러(약 4천억 원) 규모의 한국 정부 배상 책임이 모두 소급하여 소멸됐으며 , 취소 절차 과정서 지출한 소송 비용 73억 원까지 론스타로부터 모두 환수하게 됐다.
‘산업자본 논란’ 속 헐값 인수(2003년): 악연의 시작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악연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외환은행은 BIS 자기자본비율이 건전성 기준(8%)을 밑돌며 부실화된 상태였고 ,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외환은행과 같은 대규모 기업을 인수할 사모펀드가 없어 해외 자본 유치가 절실했다.
문제는 론스타가 국내 은행법상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사모펀드(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였다는 점이다. 예외 조항을 적용받기 위해선 외환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야 했는데, 인수 직전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8.48%로 회복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검찰은 2003년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조작해 론스타에 헐값 특혜 매각을 추진했다는 의혹을 수사했으며, 이는 ‘론스타 게이트’의 핵심 논쟁이었다.
결국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 3,834억 원에 인수했으며 , 불과 2년여 만인 2006년 재매각을 추진하며 ‘먹튀’ 논란에 불을 지폈다.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약 6조 원에 매각을 추진했으나 ,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 끝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매각 계약은 무산됐다.
‘관치금융’ 비판과 4.6% 배상 판정 (2012년~2022년)
외환은행의 HSBC 매각이 무산된 후, 론스타는 2012년 이를 하나금융지주에 3조 9,157억 원에 매각하며 최종적으로 약 4조 7천억 원 규모의 막대한 시세차익 및 배당 이득을 챙겼다. 그럼에도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지연시키고 가격 인하를 압박했으며, 자의적인 과세 처분(도관회사 논란)으로 46억 7,950만 달러(약 6조 9천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ISDS를 제기했다. 도관회사(도관법인)란 조세회피나 법규 회피를 목적으로 실질적인 사업 활동이나 경영 실체 없이 형식적으로만 설립된 회사를 말한다.
어쨌건 10년의 공방 끝에 2022년 8월, ICSID 중재 판정부는 론스타의 쟁점 중 '(한국금융당국의) 하나금융과의 매각 가격 인하 압박' 부분만을 인정했다. 판정부 다수 의견은 한국 금융당국이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가격 인하를 달성할 때까지 승인을 보류한 행위를 '투자보장협정상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의무(FET) 위반'이라고 규탄했다. 이는 국내의 ‘관치금융’ 행태에 국제법적 책임을 부과한 것으로 해석됐었다.
다만 판정부는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점을 지적하며 론스타를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 비유하고 , 정부 책임을 손해액의 50%로 제한하는 '과실상계' 법리를 적용했다. 그 결과, 청구액의 4.6%인 원금 2억 1,650만 달러(약 4천억원) 배상 판정이 내려졌다.
최종 승소의 결정적 법리: ‘절차적 하자’의 승리 (2025년)
2022년 판정 이후, 한국 정부는 배상액 전액 취소를 목표로 판정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ICSID 취소 절차는 실체적 판단을 다투는 항소와 달리, 판정부의 권한 유월이나 중대한 절차 규칙 위반 등 좁은 범위의 절차적 하자만을 심사한다.
2025년 11월 18일, ICSID 취소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취소 신청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며 대한민국의 최종 승소를 선고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승소의 결정적 계기로 "중재 절차 과정에서 적법 절차 위반이 상당히 중대하게 발생했다는 점이 취소위에서 한국 정부의 취소 신청을 받아들인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혔다.
취소위원회는 특히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인용해, 2022년 중재 판정이 “결정적 증거 없이 추측성과 전문 증거만으로 한국 정부에 책임을 인정한 것은 증거 법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즉, '관치금융' 비판의 근거로 채택되었던 간접적이고 추측성 강한 증거들이 국제 중재의 엄격한 증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정부의 정당한 규제 권한 행위를 국제법상 위법 행위로 인정하려던 2022년 판정의 근본적인 무결성이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번 최종 승소는 13년간 이어진 거액의 소송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고 국가 재정을 보호했다는 중대한 성과를 넘어 , 국가 행정 행위의 증명 책임을 엄격하게 따지는 국제 중재의 새로운 선례를 마련했다는 법리적 중요성을 가진다. 향후 ISDS 분쟁 대응에 있어 실체법적 방어뿐 아니라 중재 절차의 엄격한 무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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