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게양대에 걸린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뉴스1 자료사진
정부가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핵심으로 한 조직 개편을 내년 9월부터 시행하는 가운데 검찰 내부에서 경찰 권한 비대화와 사법통제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장진영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부장검사는 17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사법통제의 포기’라는 글을 올려 경찰에 대한 사법통제가 사실상 풀려가고 있다며 상황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장 검사는 현재 일선의 인력 공백이 재직 중 가장 악화됐다고 밝혔다. 특별검사팀 파견 확대, 휴직·연수 등으로 반복적으로 사건 재배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세부 조치 없이 검찰청 폐지 발표가 진행돼 검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선 검사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인원이 과중한 사건 부담을 떠안는 상황이 반복되며, 검사들이 하루 단위로 쌓이는 사건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장 검사는 “검찰이, 검사들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된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아직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한만 비대해지는 경찰에 대한 사법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적어도 범죄자 천국, 무법천지로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볼 것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사법통제란 검사가 경찰 수사를 법적으로 감시·점검하는 것을 뜻한다.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 절차가 지켜졌는지, 증거 수집이 적법한지, 인권침해가 없는지, 혐의 판단이 타당한지 검사가 확인하고 바로잡는 역할이 사법통제다.
장 검사는 검사 직접수사권 폐지로 경찰 권한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인력난과 업무 과부하로 검사들이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건송치(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예외 없이 검찰에 보내는 것)나 수사지휘 부활을 부담으로 느끼고, 검사 책임만 커지는 보완수사권도 필요 없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불송치 건수 증가, 경찰 인력난, 강제수사 과정에서의 법률적 문제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법통제를 포기하면 그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일선 경찰이 피의자 물건을 임의제출로 압수한 뒤 일부 서류 누락을 뒤늦게 확인해 피의자 집을 직접 찾아가 서명을 받으려던 과정에서 피의자가 놀라 변호사를 선임한 사례도 소개하며 절차적 문제 증가가 현실적인 위험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 검사는 검찰과 법무부가 일선의 인력난 해소와 비대해질 경찰 권한을 통제할 실효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장 검사는 그간 임은정 검사장을 ‘지공장님’이라고 부르며 사실상 조롱했고, 관봉권 띠지 사건과 관련한 정성호 법무장관의 상설특검 추진 방침을 비판하는 등 검찰 주류 입장을 대변해온 인물이다.
그는 검찰 내부망에 ‘임은정 지공장님, 1:1 공개토론을 제안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려 검찰청 폐지를 지지한 임은정 검사장을 조롱했다.
그는 역시 내부망에 글을 올려 "악의 축인 검사들이 파견돼 특검 수사를 오염시키고 있다. 특검에서 내쫓아 민생수사로 속죄하게 해달라"고 말하며 특검팀 파견 검사들의 복귀를 지지하기도 했다.
당정이 검사들을 개혁 대상, 즉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분리해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추진했으면서도 정작 특검 수사에서는 검사들을 활용하는 상황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됐다.
<장진영 부장검사가 이프로스에 올린 글>
현재 여러 중대한 이슈들이 많은 상황이지만, 잠시 일선 청으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현재 일선 청의 인력난은 적어도 제가 검사로서 근무한 기간 중 가장 열악한 상태입니다.
특검 파견이 본격화되고, 법원 전관, 휴직, 연수 등으로 벌써 올해 6월 이후에만 몇 번째 재배당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부적인 후속 조치 없이 갑작스레 진행된 검찰청 폐지로 검사들의 사기는 무너지고, 내려앉는 어깨 위에는 끊임없이 재배당이 이어집니다. 여기에 일선을 지원하고 감독해야 할 대검과 법무부는 일선을 오히려 방기하다시피 하고, 외풍을 막기보다 외풍이 불기 전에 오히려 미리 내풍을 거세게 일선으로 보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선의 검사들이 일선을 대거 이탈하고, 이탈한 이후 남은 부담을 떠안는 검사들도 버티지 못하고 추가로 또 떠나고 있습니다.
새로 검사들을 계속 뽑는다고 해도 현재 적체된 많은 재배당과 장기 사건들로 인해 검사들은 검사로서 제대로 된 사명감을 느끼기보다 감당하기 힘든 양의 사건들을 하루하루 허덕이며 기계적으로 처리하다 어느 순간 자괴감이 밀려와 더 많은 수의 검사들이 이탈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검찰이, 검사들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된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고, 아직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한만 비대해지는 경찰에 대한 사법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적어도 범죄자 천국, 무법천지로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볼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현재 심각한 것은 검사들의 인력난으로 업무 과부하 상태가 이어지고, 종전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 지휘가 폐지된 상황에서 점차 검사들이 경찰에 대한 사법 통제를 사실상 포기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으로 더 이상의 추가 업무 부담이나 책임을 떠안고 싶어 하지 않는 검사들은 전건 송치나 수사 지휘의 부활을 거부하고, 검사들의 책임만 가중되는 보완 수사권도 필요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 폐지로 경찰의 권한은 비대해지고, 경찰 역시 현재 심각한 사건 지연과 인력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불송치 건수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고, 불송치 제도로 인한 부패 지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법률 전문가가 아닌 경찰의 수사 권한 확대로 일선 경찰의 수사 과정, 특히 강제 수사 과정에서 절차나 증거법적 문제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실체 규명의 저해 요인이나 부당 인권 침해 소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많음을 시사합니다.
최근 일선 경찰이 임의 제출로 피의자의 물건을 압수한 후 일부 압수 관련 서류를 누락한 것을 뒤늦게 발견하여 서류에 서명 날인을 받기 위해 피의자의 집을 직접 찾아가자 이에 놀란 피의자가 갑자기 변호사를 선임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변호사들은 일이 많아질 테니 변호사 시장은 활개를 칠 것이나 그만큼 국민들의 등골은 휘어지게 될 것입니다.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로서 형사 법정의 문을 여는 국가의 대표적인 기소 기관임과 동시에 인권 옹호 기관으로서 사경 등 수사 기관에 대한 사법 통제 기능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보 정권의 검찰 개혁의 본질은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을 없애고, 그에 상응하여 비대해지는 경찰에 대한 검사의 사법 통제 기능을 강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검찰 역시 사법 통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의 업무 여건이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할 기능이 민생 범죄 수사 권한을 포함하여 가장 폭넓은 수사 권한을 국민들에게 직접 행사하게 될 사경에 대한 사법 통제가 아닌가요. 검사들이 사법 통제를 포기하면 그 피해는 누가 보는 것입니까.
사경이 수사한 모든 수사 기록을 검찰이 들여다보고 언제든 감독할 수 있다는 제도 설계 자체가 사법 통제의 실효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를 보면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검찰의 사법 통제 기능에 대한 관심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검사들이 검찰의 본질적 기능인 사법 통제를 점차 포기하고 있고, 입법 기관이나 법무부, 대검도 제대로 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왜 이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일까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요.
법무부, 대검에서 검사들이 검사의 본질적 기능인 사법 통제 기능을 포기하지 않도록 일선의 인력난 해소와, 앞으로 모든 수사 권한을 가지고 민생을 직접 단속하며 사건 관계인을 수사하게 될 비대해질 경찰 권한에 대한 실효적인 사법 통제 방안 마련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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