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전통주와 소규모 양조장의 숨통을 트기 위한 국세청의 규제 혁신이 본격화됐다. 행정 편의 중심으로 굳어져 있던 기존 규제 체계를 현장 중심으로 재편해, ‘K-SUUL’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방향 전환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번 개선안은 그동안 산업 성장을 가로막았던 병목을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선 납세증명표지 부착 기준의 완화는 제조 현장이 오래전부터 요구해 온 핵심 의제였다. 전통주 감면 기준이 확대된 흐름에 맞춰 부착 제외 기준도 발효주류 1,000㎘, 증류주류 500㎘로 상향되면서, 소규모 생산자 중심의 현장에서 느끼던 행정부담이 크게 줄게 됐다. 이로써 영세 제조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비용 부담 역시 눈에 띄게 경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규 양조장을 위한 부착 의무 면제 조치는 산업 생태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낸다. 면허 취득 후 다음 분기까지는 아예 부착 의무를 적용하지 않아, 매년 약 90곳에 이르는 신생 소규모 양조장이 초기 비용을 절감하고 제품 개발과 품질 향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창업 초기 가장 취약한 단계를 지원하는 실질적 제도 개선이다.
전통주·수제주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변화는 시음주 규제 완화다. 체험 중심 소비가 주류가 된 상황에서, 시음은 중소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다. 기존 한도가 좁아 홍보에 제약이 많았던 현실을 감안하면, 전통주 물량의 약 20% 확대는 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업계가 ‘숨통이 트였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국가·지자체가 주관하는 축제·행사에서 소매업자도 시음주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 범위가 확대된 점은 전통주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정책적 메시지로 읽힌다. 그동안 소매 단계의 홍보는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이번 조치를 통해 소비자가 전통주를 접할 기회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소비자 경험의 확장은 전통주 산업 성장에 직결되는 핵심 요인이다.
주류판매계산서의 전자문서 허용은 디지털 전환이 늦게나마 주류 유통에 적용된 사례다. 종이 기반 문서는 훼손·분실 위험이 크고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전자문서 허용으로 유통 현장의 비효율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단계 유통 구조가 특징인 주류 시장에서는 문서 관리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곧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종합주류도매업 면허 산정 방식 역시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변화다. 관광지처럼 소비량은 많지만 인구수가 적다는 이유로 신규 면허가 제한되던 상황은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대표 사례였다. 앞으로는 ‘인구수’와 ‘소비량’ 기준 중 더 큰 값을 적용해 실제 수요에 맞춘 유통 구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유도하고 지역 유통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면허 구조가 유연해지면 자연스럽게 유통 시장의 경쟁도 촉진된다. 기존의 고착된 구조로는 새로운 전통주 브랜드가 시장에 자리 잡기 어려웠던 반면, 이번 조정은 지역별 수요에 맞는 다양한 유통 모델이 등장할 여지를 넓힌다. 이는 장기적으로 소비자 선택권 확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변화다.
개선안이 갖는 의미는 전통주 산업이 문화상품을 넘어 전략 산업으로 전환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국내 소비뿐 아니라 해외 진출까지 고려하면, 품질 경쟁력뿐 아니라 제도 환경 역시 필수적인 경쟁 요소가 된다. ‘K-SUUL’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에 한국 술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규제 혁신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했던 셈이다.
물론 이번 조치가 규제 개선의 끝은 아니다. 온라인 판매 규제, 복잡한 도매 구조, 지역 특성 반영이 부족한 가격 제도 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은 국세청이 산업 성장과 시장 현실을 고려한 정책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전통주와 소규모 양조장이 진정으로 성장하려면 규제의 방향이 ‘관리 중심’에서 ‘지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조치는 그 첫걸음을 제대로 내딛었다는 점에서 산업 전체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다. ‘K-SUUL’의 글로벌 도약은 결국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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