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기업 현장에는 구조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안전관리는 단순한 규정 준수가 아니라 기업 생존과 직결된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기획에서는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추진 중인 리스크 관리 체계, 스마트 안전시스템 도입 사례, 내부 조직문화 변화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개선 시도와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산재 사망 근절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 산업 현장의 실태와 변화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편집자주]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높아진다”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수년째 전사적 안전경영을 강조하며 ‘백년효성’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실제 계열사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안전 제로’ 구호가 현장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현실, 그 이면에는 구조적 관리 부실과 불투명한 정보공개라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 효성그룹, 안전보건 경영 방침...정기적 평가와 보완 집중
효성그룹은 ‘중대재해 및 중대산업사고 제로(ZERO)’ 달성을 목표로 전 임직원의 참여를 강조하는 안전보건경영 방침을 추진 중이다. 조현준 회장은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며 사업장별 의식·제도·환경 개선, 근로자 의견 청취 등 정기적 평가와 보완을 주문해 왔다.
각 사업부에는 COO 직속의 최고안전책임자(CSO)가 배치돼 있으며 현장 안전보건팀이 사업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 점검을 실시한다. 사내에서는 안전 관련 소식지와 대피요령 안내, 안전제안 캠페인, 현장 포상제도, 안전문화 공모전 등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특히 효성중공업은 ‘중대재해 제로’를 목표로 ISO 45001 및 KOSHA-MS 인증, 전사적 점검체계, 협력사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강조한다. ESG 보고서 또한 ‘건설 중대재해 무사고 실적’, ‘산업안전설비 투자’, ‘협력사 안전 강화’ 등 안전활동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 '안전경영' 선언했지만…창원공장 ‘산업재해 정보 비공개’ 논란
하지만 현장의 현실은 그룹의 이상과 다르다.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에서는 2023년 지게차와 중량물 관련 사고로 노동자가 숨졌고 사고 원인과 개선책을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앞서 30대 사무직 직원이 33톤 지게차에 치여 숨지고 60대 기능계약직 노동자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700kg 전동기 프레임에 깔려 사망하는 등 대형 장비 연루 사고가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안전조치 미비, 외주화로 인한 관리 부실, 교육 부족 등을 복합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점은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이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산업재해 조사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법인의 영업상 비밀 침해’를 이유로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공공성과 투명성 요구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 조사 자료는 단순히 기업의 비밀이 아닌 사회적 안전 자산”이라며 “정보 비공개는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어렵게 하고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결국 조현준 회장이 강조한 ‘360도 안전 관리체계’가 현장에서 실질적 제어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재해 발생 후조차 주요 정보가 차단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 부산 추락사고·성남 현장 안전 위반도 잇따라…“생명보다 공기(工期)가 먼저인가”
이 같은 문제는 창원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달 15일 오전 부산 남구 우암동 ‘효성 해링턴 마레’ 신축 현장에서는 작업자 A씨가 지하 1층에서 지하 3층 약 12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당시 작업 구간의 안전난간대가 해체된 상태였고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현재 경찰은 안전조치 미흡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 현장은 효성중공업과 진흥기업이 공동 시공 중이며 우암1구역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성남 효성중공업 건설현장에서도 안전 위반 사례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거푸집 인양 설치’ 작업 중 3m 높이 상단에서 발판과 안전대 없이 작업이 진행되는 영상이 확인됐다. 작업자는 철근을 붙잡은 채 균형을 겨우 유지하며 일했고 이는 명백한 산업안전보건규칙 위반에 해당한다. 현장 관계자들은 “생명보다 공기와 이윤이 우선”이라며 감독 부재를 비판했다.
지난 7월에는 우천 상황에서도 콘크리트 타설이 강행됐고 국토교통부 콘크리트 표준시방서에 따른 시간당 강우량 기준이나 천막 설치 등 기본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로 인해 성남시 재개발과는 8월 점검업체를 통해 점검에 착수, 비파괴검사와 코어 채취를 통한 안전진단을 진행했다.
성남시 재개발과 2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성남시는 점검업체를 통해 점검을 시행했다”며 “안전 점검업체에 보고받은 바로는 안전치 내로 이뤄진 걸로 나와 있으나 성남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정밀 검사를 위해 감리단을 현장 재검토하도록 지시하고 해당 결과를 문서로 제출 받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효성중공업의 2024년 ESG보고서를 살펴보면 ‘산업재해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사업장’, 건설사업 3년 연속 ‘중대재해 무사고’, ‘산업안전시설 투자 및 환경지수 감축’, ‘협력사 안전설비 지원’ ‘선제적인 산업재해예방 조치’와 ‘실질적인 안전보건업무 수행’ 등 긍정적 지표를 내세운다.
또한 산업재해 예방조치의 일환으로 협력업체 대표자를 대상으로 안전보건(작업공정 조정, 재해 발생 시 대피방법 등)에 관한 사항 협의를 위해 월 1회 회의를 진행 중이며 원∙하도급 간의 안전보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전사적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부산·성남 현장을 비롯한 각지 재해 사례, 안전관리자 부재, 현장규칙 위반, 반복적 산업사고는 “구호와 현실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효성 관계자는 “과거 잘못된 점들은 시정조치 된 상태”이며 “당사는 해당 현장이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법령을 준수하는 현장이 될 수 있도록 관리 감독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답했다.
◆ 효성그룹의 과제는 ‘안전경영’의 신뢰 회복
결국 효성그룹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구호와 보고서에 머물지 않는 ‘실질적 전환’이다. 첫째, 투명성 강화가 핵심이다. 중대재해의 조사 결과와 조치 이행 내역을 공개해 사회적 감시를 수용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정보 비공개는 기업 신뢰와 ESG 경영 가치 모두를 떨어뜨린다.
둘째, 경영진의 현장 책임 강화가 요구된다. 안전경영위원회의 권한을 실제 투자 결정과 인사평가에 연동해 안전이 경영의 중심의제로 작동해야 한다.
셋째, 협력사 안전동반 체계가 필요하다. 하청·재하청 구조로 인한 현장 위험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위험성 평가와 안전예산 배분을 본사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전문화의 내재화가 장기 목표로 제시된다. “위험을 숨기기보다 공유하는 조직”, “사고를 문책보다 학습으로 전환하는 기업 문화”가 정착될 때 조현준 회장의 효성 ‘백년기업’ 비전은 비로소 근로자의 생명 위에 기반한 지속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
안전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효성의 다음 단계는 ‘산업안전의 기업화’”라고 입을 모은다. 안전을 단순한 관리 부문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으로 간주해야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효성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현장에 체감되는 안전혁신’ 그 자체”라며 “조현준 회장이 강조한 ‘지속가능한 백년효성’의 실현 여부는 바로 이 변화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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