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영포티' '꼰대' 등 기성세대를 비꼬는 각종 혐오표현이 쏟아지는 배경에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사회·경제 진입장벽이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기성세대가 만든 두터운 진입장벽에 사회와 기업의 재원이 낭비되는 탓에 청년세대의 기회가 줄었다는 지적이다. 해고가 어려운 노동시장 현실은 신규채용 축소를 야기했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성세대들의 갭투자 등 투기성 주택 매매로 생겨난 대출규제 때문에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게 대다수 청년들의 반응이다.
"성과·능력과 별개로 보상·근속여부 결정, 노동시장 경직에 청년 취업 문턱은 점점 높아져"
20·30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40대 이상의 중·장년 세대를 향한 적개심 섞인 목소리가 유독 높다. 각종 혐오 표현으로 대변되는 청년세대의 적개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그 배경에는 기성세대가 만든 두터운 사회·경제적 진입 장벽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청년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시도가 청년세대의 기회 박탈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설명이다.
대학생 김수찬 씨(24·남·가명)는 "대기업 직원으로 구성된 노동조합들의 권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대기업 일자리 질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데 이게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며 "단순 복지 외에 기존 직원들을 내보내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는데 결국 이런 식이면 신규 채용 문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토로했다. 이어 "요즘 정년연장 이야기까지 들리는데 이런 식이면 우리 같은 청년들은 정말 갈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취업준비생 유희진 씨(25·여·가명)는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너무 떨어지고 노동 관련법도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친 것 같다"며 "외국은 능력에 따라 보상과 근속 여부가 결정되니 기업의 성장속도도 빠르고 젊은 직원들도 빨리빨리 유입되는데 한국은 우리 같은 청년들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영위기로 인한 인력감축에도 거액의 위로금까지 주는 게 현실인데 기업들이 AI시대를 어떻게 대처할 지 의문이다"며 "지금이라도 경직된 노동시장을 바꾸는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대기업과 시중은행 등의 인력감축 과정에서 희망퇴직 신청자에 대한 파격적 혜택이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당장 인력 효율화로 인한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하반기 희망퇴직을 실시한 엔씨소프트는 3분기 실적이 적자로 돌아섰다. 마케팅 등의 비용이 크게 줄었지만 일회성 퇴직위로금 지급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영업손익에 부담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하반기 최대 30개월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을 내걸고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
"기성세대 때문에 생긴 빚내서 집 사는 것도 불가능한 현실, 결혼·출산은 먼 나라 이야기"
집값 폭등과 높아진 내 집 문턱과 관련해서도 기성세대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대출규제, 토지거래허가제 등 각종 규제로 집을 사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성세대들의 갭투자 등 투기성 주택 매매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빚을 내서 집사는 행위도 일정 수준의 종잣돈과 꾸준한 수입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국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를 없앤 근본적 원인이 기성세대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 정준수 씨(33·남·가명)는 "지금으로부터 한 5~6년 전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부동산 열풍이 불었었다"며 "그 땐 모아놓은 돈도 없고 수입도 일정하지 않아 '빚투'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막상 취직을 하고 나니 이젠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조차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결국 지금 이렇게 집을 사기가 어려워진 게 기성세대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같은 보통 청년들은 지금의 높은 집값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피해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직장인 김정훈 씨(34·남·가명)는 "사기 때문에 전세는 불안하고 대출 규제로 집을 사기도 불가능하다 보니 월세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며 "임대료, 관리비, 공과금 등을 합하면 매 달 수입의 30% 넘는 돈이 주거비로 고스란히 빠져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나 빚투, 다주택자 등 이런 건 나랑 전혀 상관이 없는데 왜 내가 피해봐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에는 취직하고 몇 년만 성실히 일하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또 집도 산다했는데 지금은 집을 살 방도가 없으니 결혼이나 출산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파이터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8∼2023년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이 지난 2008년 2억2589만 원에서 2023년 3억6904만원으로 63.3% 상승하는 동안 혼인 건수는 32만7715건에서 19만3657건으로 40.9% 감소했다. 또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3'을 보면 전 연령대가 결혼을 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주거 마련 등 '결혼 자금 부족'(3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지난해 11월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국토 불균형과 저출산의 관계: 지역별 고용·주거 불안정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시·군·구 별 아파트 전세 가격이 평균 10% 오르면 합계출산율은 0.01명 줄고 조출생률은 0.09명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통상 전세 가격은 매매 가격과 정비례한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세대의 적개심이 커질수록 단순 세대갈등 수준을 넘어 사회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금이라도 청년세대를 사회·경제적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중기 신한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비하하는 표현 속에는 고착화된 진입 장벽에 대한 불만이 반영돼있다"며 "이 갈등은 단순한 세대 간 대립을 넘어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성세대는 비교적 경제력과 주택 문제에서 여유를 가지고 있지만, 청년들은 그 기회를 얻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청년들이 경제적 주체로 원활히 진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과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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