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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13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주관으로 ‘담배유해성관리정책위원회’를 열고 검사 대상 성분 목록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담배 제조업자와 수입판매업자는 궐련의 경우 타르와 니코틴 등 44종, 액상형 전자담배는 20종의 유해성분을 2년 주기로 검사해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타르를 개별 유해성분 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제도의 설계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라고 지적한다. 타르는 특정 화학물질이 아니라 담배 연기 입자상 물질에서 니코틴과 수분을 제외한 잔여물의 총량(Total Particulate Matter)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천 가지 화학물질이 혼합된 단순 총량 지표인 타르를 단일 ‘성분’으로 규정한 것은 과학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국제적 규제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표준화기구(ISO),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주요 규제기관은 타르를 유해성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 FDA는 타르 수치 표기가 소비자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2009년부터 라벨 표기를 금지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타르 대신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 구체적인 발암물질 수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OECD 국가 대부분이 WHO 권고에 따라 타르 표기를 삭제하는 추세임에도, 한국은 일본과 함께 타르 수치를 표기하는 예외적 국가로 남게 됐다.
가장 큰 우려는 소비자 혼란이다. 과거 ‘저타르 담배가 덜 해롭다’는 인식은 이미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정부가 타르를 유해성분으로 공인할 경우 ‘타르=유해성의 척도’라는 잘못된 인식이 고착화될 수 있다. WHO는 “타르 수치는 위험 노출을 반영하지 않으며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든다”고 수차례 경고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성분 공개 제도가 국제 데이터와 비교 불가능한 ‘갈라파고스 규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개별 독성 물질을 정밀하게 측정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법의 당초 취지가 퇴색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관건은 앞으로 있을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다. 이번 심의에서는 제도의 국제적 정합성과 소비자 정보 보호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타르 기준 논의는 규제 체계의 신뢰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타르 중심의 측정 방식에서 벗어나, 발암물질을 기반으로 한 보다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검사 체계로 전환하는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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