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신뢰의 기술인 블록체인과 지능의 기술인 인공지능(AI)이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웹3블록체인협회와 한국인공지능협회, 법무법인 디엘지가 17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드림플러스 강남 이벤트홀에서 개최한 'From Trust To Intelligence : 블록체인과 AI 융합이 만든 새로운 산업 생태계'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빅테크 중심의 데이터 독점 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디지털 경제 모델을 제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블록체인과 AI 융합 기술 전문가들이 참석해 "AI가 설계·운영하고 블록체인이 검증·정산하며, 최종 통제는 인간이 맡는 "새로운 시스템 구조를 제안했다.
첫 발표자로 나선 윤석빈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트러스트커넥터 대표)는 'AI 네이티브(AI-native)' 시대의 도래를 강조했다.
윤 교수는 "과거 디지털 네이티브가 인터넷과 모바일을 당연하게 쓰는 세대였다면 이제는 검색창 대신 AI에 질문을 던져 답을 '생성해 내는' 세대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3.0' 개념을 소개하며 "사람이 직접 코드를 짜는 1.0 시대,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2.0 시대를 지나 이제는 거대언어모델(LLM)에 자연어 프롬프트를 던져 기능을 구현하는 3.0 시대"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 소수만 개발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며 "자기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프롬프트 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AI 네이티브 기업의 특징으로 ▲ 모든 의사결정을 데이터에 기반해 실시간으로 내리고 ▲ 서비스는 사용자 피드백을 스스로 학습하며 ▲ 조직은 작은 팀 단위로 쪼개져 끊임없이 실험하는 구조를 꼽았다. 그는 "기업만의 독점 데이터를 쌓아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데이터 해자'를 만드는 게 승부처"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이 블록체인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게 윤 교수의 진단이다. 현재의 중앙집중형 AI가 소수 빅테크에 데이터와 권한을 집중시키는 구조라면 블록체인은 탈중앙 네트워크와 자기주권신원(DID·Decentralized Identity)을 통해 데이터와 보상을 사용자에게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사용자들은 탈중앙화 식별자(DID)와 검증가능 자격증명으로 본인임을 증명하면서도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제공하고 데이터 제공 대가를 토큰 형태로 보상받는 구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I의 편향과 책임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발표에서는 '투명성·공정성·안전성·개인정보 보호·책임성'이 신뢰 가능한 AI의 다섯 축으로 제시됐다. 특히 공공·금융·의료 등 고위험 영역에서는 AI 의사결정 과정과 데이터 출처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누구나 검증할 수 있게 하는 '온체인 감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 교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인간을 대체하는 AI가 아니라 인간의 역량을 확대하는 '인간 중심 AI'"라며 "기술 개발 초기부터 인문·사회·법·의료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앤드어스 대표)은 'cGTAI(controllable Global Trust AI·통제가능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박 센터장은 "블록체인이 '글로벌 신뢰 컴퓨터'였다면 이제는 지능을 입힌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으로 진화해야 한다"며 "AI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디지털자산, 암호경제를 이해한 상태에서 스스로 운영하되, 정책·규제·킬스위치(긴급 중단 장치)로 인간이 언제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기존 탈중앙화 AI(DAI)의 한계도 지적했다. 노드와 모델이 분산돼 투명성은 높지만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데이터 출처와 사용권이 불투명하며 비상 상황에서 빠르게 제동을 걸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센터장은 "공공 인프라로 쓰이는 AI라면 '통제 가능한 자율성'이 핵심이어야 한다"며 "cGTAI는 자율성과 책임, 혁신과 규제를 동시에 잡기 위한 설계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청사진은 한마디로 "AI가 운영하고 블록체인이 기록하며 사람과 제도가 최종 통제하는 자율 진화형 디지털 문명"이다.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철학이 이미 산업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는 사례도 소개됐다. 의료 분야에서는 서울대병원의 연합학습과 블록체인을 결합한 사례가 발표됐다. 병원별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 각 병원 안에 둔 채 AI를 학습시키고 참여 병원들의 기여도와 보상을 블록체인으로 조율·기록하는 방식이다. 민감한 의료데이터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기관의 데이터를 합쳐 AI 성능을 높이는 '차세대 데이터 인프라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운송 분야에서는 운수사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AI로 계산하고 이를 탄소배출권 형태의 NFT(대체불가토큰)로 발행해 블록체인에서 거래하는 플랫폼이 소개됐다. 전기버스·화물차 운행 데이터를 자동 수집해 감축 실적을 산정하고 배출권 발행·유통·정산 과정을 스마트 컨트랙트(자동 실행 계약)로 처리하는 구조다.
법률·콘텐츠 영역에서도 융합 사례가 제시됐다. 분쟁 상황을 입력하면 AI가 내용증명 초안을 작성하고 변호사가 이를 검수한 뒤 인터넷우체국과 연동해 발송까지 처리해 주는 서비스, 아티스트의 창작물·기업 설계도·고객 상담 기록 등을 토큰화해 '데이터 자산'으로 만들고 AI 학습과 활용 이력을 블록체인에 남기는 모델 등이다.
이날 행사를 관통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AI와 블록체인의 융합은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진행형 변화이며, 한국이 먼저 '통제가능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 모델을 제시한다면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룰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기술은 이미 나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법과 제도 그리고 이를 설계할 '한국형 거버넌스'"라며 "신뢰에서 지능으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