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 이후 후속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함께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제51차 통상추진위원회를 열고, 비관세 분야까지 포함한 이행 계획 전반을 꼼꼼히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기획재정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방부 등 통상 이슈와 직접 연결된 주요 부처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번 점검회의는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의 후속 절차를 구체적으로 논의한 자리라 그 의미가 더 크다. 최근 양국이 자동차·농산물 관세 문제로 난항을 겪다 협상이 최종 타결됐다. 하지만 관세만으로 모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보니 이제는 시장 접근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과 경제안보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공동 설명자료 안에는 자동차 안전기준, 식품 검역, 디지털 규범, 경쟁정책, 지식재산권, 노동·환경 기준 등 다양한 비관세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관세 문제가 해결됐다고 통상 마찰이 끝나는 건 아니며, 오히려 실제로 수출기업들이 실감하는 장벽은 기술·인증·데이터와 같은 비관세 영역에 더 많다"며 "이번 협상으로 사실상 2단계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회의에서는 각 부처가 미국과 조율해야 할 세부 과제들도 공유됐다. 농식품부는 농산물의 위생·검역 기준과 수입 절차 등 민감한 농업 분야를, 과기정통부는 디지털 무역 규범과 데이터 이동 관련 협력처를 맡기로 했다. 국방부는 공급망 안정화와 방산 협력 조항을, 기획재정부와 외교부는 전체적인 경제안보 의제 조율을 책임진다.
특히 산업통상부는 연내 미국 무역대표부와의 후속 협의 일정을 확정하기 위해, 12월에 열릴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다룰 의제별 이행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다. 이날 회의도 공동위원회를 앞두고 부처별 입장을 정리해 '국가 차원의 협상 전략서'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디지털 규범, 노동·환경 기준 등 폭넓은 의제를 제기하고 있어 협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며 "국내법과 제도 개선 필요성까지 따져봐야 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부처 간 긴밀한 협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한구 본부장은 "오랜 기간 이어진 관세 협상이 마무리된 만큼, 이제는 비관세 분야 협의를 빈틈없이 추진해야 할 때"라며 "한미 통상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기업의 사업과 투자 결정에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각 부처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공동위원회에서 논의된 비관세 조항 이행 방향을 연말까지 제도화하고, 필요할 경우 내년 상반기 추가 대책도 마련할 방침이다. 산업통상부는 "단순히 협정 이행에 그치지 않고, 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불확실성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비관세 이슈 전반을 꼼꼼하게 관리하겠다"며 "공급망, 산업안보, 디지털 무역 등 전략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도 한층 더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계 역시 정부의 대응이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미국 수출이 많은 산업은 관세보다 기술인증이나 보조금 기준 같은 비관세 장벽의 영향이 훨씬 크다"며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 체계를 마련한 게 기업들에게 좋은 신호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관세 합의가 1단계 작업이었다면, 비관세 후속조치는 실제 한미 통상 관계의 '체감도'를 가르는 2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부처 간 조율과 미국 측과의 실무 협의를 통해 연내 실질적인 이행 로드맵을 완성하고, 산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통상환경 안정화에 힘쓸 예정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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