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마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2년 서울 동대문 훈련원 광장에서 열린 조선경마구락부 주최 경마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 스포츠 도입이 서구 문물의 상징이던 시절 경마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근대 도시의 ‘문명지표’로 여겨졌다. 이후 1954년 정부는 한국마사회를 재출범시키며 전후 복구기에 새로운 산업과 여가문화를 결합한 공영경마 체계를 정립했다. 뚝섬경마장은 1960~80년대 동안 수도권 시민의 대표적인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경마장 가는 날’은 서민의 일상 속 축제였다.
그러나 도시가 팽창하면서 뚝섬은 더 이상 경마의 터전이 될 수 없었다. 한강변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설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주거지역과의 충돌 문제도 커졌다. 결국 마사회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선택된 곳이 ‘경기도 과천’이었다. 서울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자연환경이 살아 있는, ‘도심 속 여유’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 1989년, 과천 시대의 개막
1989년 8월6일 뚝섬에서의 마지막 경주가 끝났다. 그리고 한 달 뒤인 9월 경기 과천에 새로운 ‘서울경마장’이 문을 열었다. 35년간 이어졌던 뚝섬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국 경마의 현대화 시대가 개막하는 순간이다.
한국마사회는 이미 과천과 인연이 깊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승마 종목을 성공적으로 주관하며 이 지역에서 국제 수준의 승마 경기를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그 노하우는 곧 현대식 경마장 건설의 초석이 됐다. 당시 서울경마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관람석과 전광판, 조명시설을 갖춘 ‘첨단 스포츠 단지’로 경기도와 함께 대한민국 레저산업의 새 장을 열었다.
개장 이튿날 한국 경마 역사상 처음으로 야간경마가 시행됐다. 트랙을 둘러싼 조명이 일제히 켜지자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경마팬은 “어둠 속에서 조명이 말의 근육을 따라 흘러가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날은 경마가 ‘도시의 문화’로 변신하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 경마장에서 ‘공원’으로… 시민과 함께 숨 쉬는 공간
1990년대 초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신도시 개발과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과천 역시 행정도시이자 주거도시로 성장하면서 경마장은 시민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바뀌었다.
한국마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공원화’를 선언한다. 1993년 마사회는 ‘서울경마장 공원화 계획’을 수립하고 승마체험장, 마사박물관, 어린이놀이터, 잔디광장 등을 조성했다. 단순히 경주를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즐기는 레저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듬해 과천선이 개통되고 ‘경마공원역’이 신설되자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그 결과 1994년 경마공원 입장객은 547만명에 달했다. 이는 같은 해 KBO 정규리그 관중 수인 419만명을 훌쩍 넘는 수치였다. 경마는 이제 도박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화와 여가, 스포츠가 공존하는 시민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경마공원은 각종 문화 행사로도 활기를 더했다. 어린이 그림대회, 애마사진전, 마상무예 시연회 등이 열리며 ‘말(馬)’을 매개로 한 체험문화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과천시민에게 경마공원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숨 쉬는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 IMF의 파고 속에서도 지켜낸 ‘경마의 본질’
1998년 IMF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공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마사회는 위기 속에서도 ‘생산의 자립’을 선택했다. 외국산 경주마에 의존하던 체질에서 벗어나 국내 말 생산 기반을 강화한 것이다.
‘국적 있는 경마’를 실현하기 위해 경주마 자급률 75%를 중장기 목표로 세우고 제주와 원당에 종마목장, 육성목장을 세워 경주마의 생산부터 경주까지 유기적인 체계를 구축했다.
같은 해 마사회는 영국의 전통 명칭을 딴 ‘코리안 더비(Korean Derby)’를 국내 최초로 시행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신설이 아니라 한국 경마가 ‘자체 혈통’을 기반으로 세계에 도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20년 뒤 결실을 맺는다.
2016년 한국 경마는 국제경마연맹(IFHA)으로부터 ‘PART II’ 승격을 받아 명실상부한 경마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마사회가 자체 개발한 경주마 교배 프로그램 ‘K-Nicks’에서 탄생한 ‘닉스고(Knicks Go)’는 2019년 미국 브리더스컵에서 준우승하며 세계 경마계를 놀라게 했다. 같은 해 한국산 경주마 ‘돌콩’은 두바이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았다. 이는 한국 경마 100년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기록됐다.
■ Life & Love–말산업을 넘어 국민 속으로
새 천년의 문이 열린 2000년대 한국마사회는 기업 정체성을 다시 정립했다. 핵심 가치로 내세운 두 단어는 ‘Life’와 ‘Love’였다. ‘생명과 사랑을 존중하는 공익기업’으로서 국민의 삶과 함께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이후 ‘KRA Angels 봉사단’이 출범하며 사회공헌 활동이 본격화됐다.
홀몸어르신과 청소년,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은 물론이고 지역 복지시설과의 협력,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팅, 돌봄사각지대 지원사업 등이 진행됐다. 과천지역에서는 재해복구, 환경정화 등 현장형 봉사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익활동 못지않게 한국마사회는 국가 재정 기여 측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현재 매년 약 1조3천억원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며 마권 판매액의 16%가 레저세, 지방교육세, 농어촌특별세로 환원된다. 이는 해외 경마 선진국으로 알려진 호주 및 일본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액수다.
과천시만 보더라도 경마공원에서 발생하는 레저세를 통해 연평균 2천300억원가량이 세수로 들어왔고 올해는 온라인 마권 발매 등의 영향으로 대폭 상향된 3천300억원 규모가 예상된다. 이 중 시에 직접 교부되는 금액만 700억~1천억원으로 시 연간 예산의 약 2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경마공원’이 단순한 시설을 넘어 지역경제의 핵심 축이 된 셈이다.
■ 말(馬)과 사람, 그리고 도시가 함께 달려온 시간
숫자로 표현되는 세금과 매출 뒤에는 보이지 않는 땀과 공감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국마사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지향하며 공익, 문화, 복지를 하나로 잇는 다리를 놓아 왔다. 경마공원 곳곳에는 가족 단위 시민, 어린이 체험객, 말산업 종사자,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한국 경마 103주년, 한국마사회 창립 76주년, 그리고 과천 경마공원 개장 35주년을 맞은 올해 마사회는 또 한번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경마공원을 넘어 국민이 함께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레저·문화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ESG 기반의 지속가능한 경영, 동물복지 강화, 말산업 생태계 선순환, 지역사회 상생 등 이제 한국 경마의 질주는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닌 공존의 여정이 되고 있다.
■ 미래를 향한 질주, 공익과 혁신의 이름으로
과천에서 다시 시작된 경마의 35년은 단순한 산업의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말, 그리고 도시가 함께 성장해 온 이야기’다.
한 세기를 넘어선 한국 경마의 발자취에는 국민의 여가를 풍요롭게 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하며 생명과 사랑의 가치를 확산시켜 온 공기업의 책임이 담겨 있다.
이제 한국마사회는 또 다른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 국민 모두가 즐기고 공감하는 ‘열린 레저문화’의 시대, 그리고 도시와 자연, 인간과 동물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형 경마공원으로의 도약. 말(馬)이 달려온 길 위에서 대한민국의 문화가 숨 쉬고, 그 문화 속에서 시민의 행복이 자란다.
한국 경마의 다음 100년은 과천에서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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