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구조적 문제를 대담한 전환을 하자고 설명하는 홍익표 대표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점점 더 촘촘해지고 높아지지만, 이 아래의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한 집값과 흔들리는 전·월세 시장을 부여잡은 채 하루를 버틴다.
올해 서울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은 다시 15배를 넘어섰고, 청년층은 ‘내 집 마련’이라는 표현 자체를 현실이 아닌 먼 미래의 언어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가 각각 내놓은 주택정책은 서로 다른 철학과 속도를 전면에 드러낸다.
하나는 ‘공공의 꿈’을 말하며 시장 안정과 기본권으로서의 주거를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민간의 속도’를 앞세워 규제보다 실행을 우선하는 정책을 내놓는다. 문제는 어느 한쪽만으로는 서울의 구조적 주택난을 풀기 어렵다는 점이며, 양측의 장점을 결합해야만 현실적인 해결책이 가능하다는 것에 점점 더 많은 전문가가 공감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재명 정부는 주거를 국가의 기본권 영역으로 판단하며 공공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수한다. 10.15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초강수는 투기 억제 의지가 명확한 조치였지만 동시에 시장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론도 컸다.
정부는 전국 250만 호 공급 계획을 제시했지만 착공률이 15%에 그치며 실효성 논란이 반복된다. 공공임대 100만 호 확충, LH 중심의 공공택지 확대, 노후 임대 재건축 등은 방향성은 옳지만, LH의 200조 원에 달하는 부채와 반복되는 사업 지연이 속도를 발목 잡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대출 규제 역시 DSR 35~40% 적용 등 투기 억제를 위해 강도 높게 이어지고 있으나 청년·신혼부부의 체감 부담은 더 커졌다는 지적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방향을 정반대로 잡았다. 오세훈 시장은 주택 공급을 민간 주도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부 규제가 실수요자 기회 박탈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9.29 대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속도와 규모’라는 표현은 그 방향을 상징한다. 서울시는 한강벨트 20만 호, 전체 31만 호 착공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내세웠고, 이미 대부분의 구역 지정이 완료돼 있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을 강조한다.
신통기획 2.0을 통한 절차 단축, 모아주택·상생주택 같은 민간형 재개발 모델 확대는 서울시가 과거 민간 주도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쌓아온 경험을 다시 꺼내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세제·규제 측면에서도 서울시는 인센티브 기반 접근을 통해 자연적인 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청년안심주택, 고령자 특화 주택 등은 재정 부담이 큰 정부 방식보다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양측의 철학 차이는 주택 공급이라는 현실 앞에서 충돌한다. 공공 중심의 정부는 ‘안정’을 얻지만 ‘속도’를 잃고, 민간 중심의 서울시는 ‘속도’를 얻지만 ‘보편적 안정성’이라는 과제를 떠안는다. 규제 강화는 투기 억제 효과가 있지만 거래와 공급을 동시에 위축시키고, 민간 중심 정책은 속도가 빠르지만 저소득층 보호장치가 약하다는 우려가 생긴다. 결국 이 두 방향은 경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이런 배경에서 떠오르는 해법이 바로 ‘공공-민간 협력모델’이다. 공공택지를 민간에 우선 공급하되 공공임대 비율을 20~30% 의무화하는 구조는 공공성과 속도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주목된다. 강남·한강변 5곳을 2026년 시범사업으로 설정해 착공률을 끌어올리자는 제안도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지역 균형 재투자다.
서울 개발이익의 일부를 지방 임대주택 확충에 활용하고, GTX 등 광역 교통망과 연계해 수도권 집중 해소에 기여하도록 하는 구조다. 강남 재개발 이익을 경기·인천 외곽 공공주택 공급과 연결하면 주거 이동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에너지 절감형 재건축, 노후 임대의 청년·고령자 맞춤형 전환, 탄소 절감 의무화는 장기적으로 주거복지와 도시 경쟁력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이다. 더 나아가 AI 기반 수요 모니터링 플랫폼을 구축해 전세 부족 지역을 실시간 파악하고 공급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공급 지연·착공률 저하 문제를 상당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규제 유연화 역시 필수 조건이다. 무주택자 대상 단계적 DSR 완화, 장기 임대주택 공급 시 세제 인센티브 등은 시장 안정과 실수요 보호를 동시에 고려하는 절충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
결국 서울의 주택 문제는 어느 한쪽의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공공의 꿈과 민간의 속도, 규제와 효율성, 안정과 실행력은 서로를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할 때 효과를 극대화하는 축들이다.
연말 예정된 추가 대책에서 정부와 서울시가 양극단의 철학을 조율해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협력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서울 주택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서로의 약점을 메워줄 때, 서울의 주거 문제는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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