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 구성에서 미국 국채보다 금을 더 많이 보유한 것은 1996년 이후 처음이다. 비주얼캐피털리스트(Visual Capitalist)가 IMF·블룸버그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2025년 기준 외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 비중은 24%,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은 23%로 집계됐다.
1970년대 이후 미국 국채는 외환보유의 ‘안전자산’으로 자리잡으며 1980년대 평균 40%대, 1990년대에는 35~45% 비중을 유지해왔다. 반면 금 보유 비중은 금 태환제 종료 이후 꾸준히 낮아져 1990년대 초 13%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지정학 리스크·미국 연방정부 부채 급증·달러 신뢰도 약화 등이 겹치면서 반세기 유지된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IMF에 따르면 금 보유 비중은 1970년대 후반 48%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급락했지만, 최근 10년간 가파른 반등세를 보이며 2025년 24%에 도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 국채 비중은 2000년대 초 35% 수준에서 2015년 20% 아래로 떨어진 뒤 현재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미국 리스크’가 뚜렷하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2025년 기준 GDP 대비 122%를 넘어섰고, 연준의 장기 금리정책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미국 국채의 안정성에 회의가 확산됐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중동 분쟁·미중 전략 경쟁 심화로 지정학적 충격이 반복되자, 중앙은행들은 “달러·국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난 분산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중국·러시아·인도 등 신흥국 중심으로 금 매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금은 발행자 리스크가 없고 제재 회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제질서가 분열될수록 매력도가 높아진다. 비주얼캐피털리스트는 “지속적인 금 매집과 미국 부채 위험이 결합해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 구조 전체를 재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니다. 이는 달러 패권의 안전판이던 국채 신뢰도가 흔들리고, ‘하드에셋(실물자산)’에 대한 글로벌 회귀가 본격화됐다는 신호다. 금 보유 비중이 미국 국채를 추월한 것은 국제금융 질서가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지만, 중앙은행들이 금으로 질적 방어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향후 10년간 국제 통화·금융질서 재편의 중요한 단초로 남을 전망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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