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학의 발전은 눈부시다. 인공지능(AI)은 의학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 환자의 영상 자료를 분석해 더 작은 병변을 찾아내고 빅데이터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한다. 특정 분야에서 AI 진단의 정확도는 이미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AI의 기술과 역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진료실에서 진단 결과를 알려주는 짧은 순간 의사의 말 한마디는 그 병을 대하는 환자의 마음을 완전히 바꾼다. “잘 치료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 다시 숨 쉴 틈을 주지만 “좀 더 지켜봅시다”라는 말은 때론 불안과 두려움으로 들리기도 한다.
똑같은 의학적 사실이라도 어떤 말로, 어떤 표정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의학이 과학이라면 진료실의 언어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는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인 수치와 분석 자료를 제공해 주지만 ‘어떻게’ 말할지는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의사가 환자와 마주 앉아 눈을 보고 설명하는 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침묵과 호흡, 공감의 시간은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괜찮습니다”라는 한마디의 온도, “잘 해내고 계십니다”라는 격려의 울림은 여전히 사람만이 전할 수 있다.
의사는 종종 말의 무게를 잊는다. 너무 많은 환자를 만나고 너무 빠른 속도로 결정을 내리며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말을 짧게 줄인다. 필자 역시 진료 직후에 회의가 있거나 외부 행사가 있을 때 가끔은 이 환자를 빠른 설명으로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음을 반성한다. 하지만 환자는 의사의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온 감각을 기울인다. 그 말이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평가하는 말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래서 말의 정확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말의 방향이다. 그 말이 환자의 마음을 닫게 만드는가, 아니면 다시 열게 만드는가.
AI가 진단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면 의사의 역할은 오히려 더 본질적인 곳으로 향해야 한다. 기술은 병을 찾고, 데이터는 예후를 계산하겠지만 환자가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은 여전히 의사의 몫이다.
AI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 속도만큼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의사의 말 한마디는 기술의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다. 의사는 단순히 결과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사람이다. 병명보다 사람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데이터보다 감정을 먼저 읽어 내는 일, 그것이 앞으로 의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책무다.
차가운 데이터 사이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미래에서 현재로 성큼 다가온 AI 시대에 의사가 지켜야 할 인간의 자존일지 모른다. 기계가 진단을 내릴 수는 있어도 환자의 마음에 닿는 ‘말’을 대신하진 못한다. 그 말의 온도, 그 침묵의 길이, 그 눈빛의 진심이 의학의 미래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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