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남해 어시장에는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감성돔이 모습을 드러낸다. 통통한 몸통과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지닌 감성돔은 남도에서 예부터 참돔보다 귀하게 대접받으며, ‘도미 중의 도미’라 불려왔다.
미식가와 낚시꾼들이 손꼽는 최고의 흰살생선인 감성돔은 일본에서 “줘도 안 먹는 똥고기”라는 혹평이 따라붙는다. 같은 생선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한 어종을 둘러싼 문화와 환경, 인간의 편견이 어떻게 맛의 기준을 바꾸는지 알 수 있다.
감성돔의 생태와 습성, 바다의 ‘흑기사’
감성돔은 농어목 도미과 어류로, 참돔과 혈통이 같다. 검은빛을 띠는 비늘색 때문에 ‘감성돔(黑鯛)’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지역에 따라 감시나 가문돔으로도 불린다.
전국 연안의 암초가 많은 바닥에서 서식하며, 강 하구의 기수역에서도 잘 자란다. 염도 변화에 강하고 물살이 거센 곳에서도 버틴다. 먹이는 조개, 게, 새우, 불가사리, 조류, 심지어 작은 물고기까지 가리지 않아 이런 잡식성 덕분에 먹이 경쟁이 심한 해역에서도 생존율이 높다.
성장 속도는 느린데, 보통 5년이면 30cm 정도, 10년이 지나야 40cm가 된다. 최대 70cm, 5kg까지 자라며, 이런 개체는 2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생애 초기에 모두 수컷으로 태어나 2~3년이 지나면 자웅동체를 거쳐 4~5년이 되면 대부분 암컷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감성돔은 사계절 낚시가 가능하지만, 제철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다. 여름에는 수온이 올라 살이 물러지고 지방이 빠지지만, 찬 바람이 불면 살이 단단해지며 맛이 깊어진다. 특히 남해안의 섬 근처에서 잡히는 감성돔은 해조류를 많이 먹어 지방이 적당히 올라 고소하다.
또한,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이 적으며, 필수 아미노산과 DHA, 오메가-3가 풍부하다. 담백하지만 감칠맛이 강한 이유다. 다른 흰살생선보다 탄력 있는 식감 덕분에 회로 먹었을 때 입안에서 탱탱하게 씹히는 느낌이 뚜렷하다.
한국에서 귀한 횟감, 일본에서 ‘더러운 생선’이 된 이유
한국에서 감성돔은 귀한 회용 생선으로 취급돼 전남과 제주에서는 참돔보다 더 높은 값을 받는다. 감칠맛이 깊고 살이 단단해 숙성회로 먹어도 물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쿠로다이(クロダイ)’라 불리며 수산시장에서 가장 싸게 거래된다. 생선 전문점에서도 잘 취급하지 않는다. 도쿄 등 관동 지역에서는 가격을 아무리 낮춰도 팔리지 않는다.
이처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서식 환경과 식습관’ 때문이다. 감성돔은 오염된 물에서도 잘 자란다. 산업화 이전에도 강 하구, 항만, 폐수 유입 지역 등지에서 자주 잡혔다. 먹이로는 조개류, 해조류, 갑각류뿐 아니라 썩은 생물이나 쓰레기도 먹는다.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잡식성이 ‘더럽다’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일본에서는 생선의 ‘사는 물의 깨끗함’을 맛의 기준으로 본다. 참돔이 청정한 바다의 상징이라면, 감성돔은 반대로 도시 하수구 근처에서도 잡히는 생선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물고기는 깨끗해야 맛있다”는 일본인들의 미식 기준에서 감성돔은 자연히 아래로 밀렸다.
이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일본 서부 지역, 특히 오사카나 규슈 지방에서는 감성돔 요리를 즐긴다. 살짝 구운 회(아부리 사시미), 감성돔 미소조림, 숯불구이 등 지역 특색 있는 요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감성돔의 진짜 맛, 한국식 조리의 정점
감성돔은 회로 먹을 때 진가를 드러낸다. 막 잡은 생선을 썰어내면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은은하게 퍼진다. 껍질을 살짝 데쳐 붙인 ‘껍질회’는 지방층의 고소함과 식감이 더해져 인기가 높다. 숙성회를 선호한다면 하루 정도 냉장 보관해 먹는 것이 좋다.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아미노산이 증가해 감칠맛이 깊어진다.
남은 뼈와 머리로 끓이는 감성돔 맑은탕은 국물이 시원하고 단맛이 강하다. 국물 맛이 깔끔해 과음 다음 날 해장용으로도 찾는다. 남도에서는 아예 큰 감성돔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끓이는 맑은탕을 손님상에 올린다. 구이로 먹을 때는 껍질이 바삭하게 익으면서 속살의 단맛이 배어난다.
감성돔은 조림, 찜, 튀김으로도 조리된다. 살이 부서지지 않고 단단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도 제 모양을 유지한다. 소금구이로 구워 먹으면 지방이 녹으며 고소한 향이 퍼지고, 간장양념에 졸이면 단짠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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