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연말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송년회와 모임, 선물 준비 속에서 ‘올해는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스며든다. 이런 고민의 한가운데서, 연극 한 편이 묘한 위안을 전한다. 바로 '마트로시카'다.
작품은 초연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삶의 아이러니와 인간사의 면면을 유머와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구조는 연말이라는 시기와 특히 잘 맞는다.
첫인상은 유머에서 비롯된다. 일부러 실수한 듯 보이는 장면, 배우들의 속사포 대사,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은 관객을 순간순간 혼란에 빠뜨리면서도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이게 연출일까, 실수일까’라는 고민 속에서 스스로 웃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이다.
그러나 웃음은 즐거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극단원들의 좌충우돌과 극단 대표 남동진의 고민,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팀워크와 헌신은 관객에게 묘한 감동을 전한다. 극을 마친 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얼굴에는 웃음 자국과 함께, 어느새 시큰해진 눈가가 남는다.
무대 위의 장치는 B급 감성과 현실적 디테일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소품, 조명, 배우들의 즉흥적 행동이 만들어내는 순간들은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준다. 이 ‘속임수 같은 웃음’이 연극의 매력을 한층 강화한다.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 또한 강점이다. 부모와 함께 관람한 관객들이 “효도한 기분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코미디 이상의 정서를 제공한다. 웃음과 감동, 그 균형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관객은 공동체적 경험을 누리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믿고 보는 수준이다. 윤제문, 정석용, 유용 등은 캐릭터마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돌발 상황 속에서도 순간을 놓치지 않고, 타이밍과 몸짓 하나하나가 관객을 현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극의 중심에는 만년 적자에 허덕이는 영세극단과 이를 지키려는 극단원들의 좌충우돌이 있다. 극단 대표 남동진은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자본을 끌어오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속되며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연극 속 연극이라는 구조적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대사가 끊임없이 오가고, 관객은 그 속에서 ‘아, 이럴 줄 알았어’라는 쓴웃음을 짓는다. 이런 순간들이 연말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한다.
웃음 뒤에 남는 여운 또한 중요하다. 반복되는 반전과 인간사의 아이러니는 유머를 넘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마트로시카'의 진짜 매력은 웃음 이상의 경험이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소동과 극단원들의 헌신을 지켜보며, 관객은 삶의 아이러니와 인간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웃음 속에 숨겨진 따뜻한 감정과 순간의 긴장감은, 관람 후에도 마음 한 켠에 잔잔하게 남는다. 이렇게 관객과 작품이 서로를 비추는 경험이야말로, '마트로시카'가 선사하는 진짜 묘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