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면 유난히 손이 가는 것이 있다. 따뜻한 배꿀차, 피로를 풀어주는 꿀물, 목이 칼칼할 때 한 숟갈 떠먹는 꿀.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에 꿀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꿀이라도 보관법을 잘못 알면 그 효능과 풍미가 쉽게 떨어진다. 꿀은 의외로 섬세한 식품이다. 단순히 ‘달고 오래가는 음식’으로 여겨 방치하기 쉽지만, 관리 방법에 따라 그 질은 천차만별이다.
꿀이 ‘천연 보존식품’으로 불리는 이유는 수분 함량이 낮고 당분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세균이나 곰팡이는 물기가 많아야 번식할 수 있다. 하지만 꿀의 수분 함량은 보통 17~20% 정도에 불과해 미생물이 자라기 힘든 환경이다. 또한 과당과 포도당이 농축된 고농도 당 용액은 세균의 세포 속 수분을 빼앗아 성장을 억제한다. 덕분에 꿀은 개봉하지 않아도 수년간 상하지 않고, 제대로 보관하면 10년 이상 두고 먹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두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꿀은 향과 맛이 쉽게 변하고, 습도와 온도에 따라 결정(결정화) 형태가 바뀔 수 있다. 이것을 ‘상했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결정화는 꿀이 오래됐거나 불량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꿀이 천연 그대로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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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꿀을 ‘신선하게’ 두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습관이다. 꿀은 차가운 온도에서 포도당이 쉽게 결정화되어 굳어버린다. 숟가락으로 퍼내기도 힘들고, 입안에서의 질감도 거칠어져 먹기 불편하다. 게다가 냉장고 안은 자주 여닫히며 습도가 높고 다른 음식의 냄새가 배기 쉽다. 꿀은 향을 잘 흡수하는 특성이 있어 김치나 마늘 냄새가 섞이면 특유의 향이 손상된다.
꿀은 실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다만 ‘실온’이라 해도 직사광선을 피하고,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장소가 이상적이다. 기온이 너무 높으면 효소 성분이 파괴되고 향이 약해질 수 있다. 대체로 15~25도 사이가 적당하다.
꿀을 담는 용기도 중요하다. 시중에는 플라스틱 짜는 꿀통부터 도자기, 유리병까지 다양하다. 이 중 유리병이 가장 이상적이다. 유리는 외부 공기와 습기를 차단하고, 냄새를 흡수하지 않으며, 세척도 용이하다. 금속 용기는 산화 반응을 일으켜 꿀의 성분을 변질시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한편 꿀단지를 오래 두면 입구 주변에 하얀 거품이나 알갱이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대개 결정화된 당 성분으로, 부패나 곰팡이가 아니다. 하지만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공기가 들어가면 수분이 늘어나면서 발효가 진행될 수도 있다. 발효된 꿀은 거품이 많고, 신 냄새가 나며 맛이 변한다. 이런 경우에는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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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꿀이 하얗게 굳어버리면 많은 이들이 전자레인지에 데우곤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꿀의 영양소를 크게 손상시킨다. 꿀 속의 효소와 항산화 물질은 열에 약하다. 4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효소가 파괴되고, 꿀 특유의 향도 줄어든다.
굳은 꿀은 미지근한 물에 중탕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병째로 40도 이하의 따뜻한 물에 넣고 천천히 녹이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단, 물이 꿀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물기가 조금만 섞여도 꿀이 쉽게 발효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
꿀을 퍼낼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젖은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사용하면 수분이 들어가 발효가 촉진된다. 반드시 마른 도구를 써야 하며, 사용 후에는 뚜껑을 꼭 닫아 공기를 차단한다. 또한 꿀을 소분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용량 꿀을 한 병에 보관하면 자주 열고 닫게 되어 산화가 빨라지므로, 소형 병에 나누어 담아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보관 장소는 부엌 찬장이나 식품 전용 캐비닛이 적당하다. 단, 가스레인지나 오븐 근처처럼 온도 변화가 잦은 곳은 피해야 한다. 여름철에는 통풍이 잘되지 않으면 내부 온도가 30도를 넘을 수 있으므로, 그럴 땐 창문 근처보다는 그늘진 곳에 두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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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은 단순히 감미료가 아니다. 피로 해소, 면역력 강화, 항산화 작용 등 다양한 건강 효과를 지닌 천연 식품이다. 하지만 이런 효능은 꿀의 성분이 살아 있을 때만 기대할 수 있다. 습기, 빛, 열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올바른 보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숟갈의 꿀이 주는 달콤함은 잠깐이지만, 제대로 보관된 꿀의 가치는 오래간다. 냉장고 대신 그늘진 찬장에, 젖은 숟가락 대신 마른 도구에, 대용량 대신 소분병에 담아두는 작은 습관이 꿀의 풍미와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다. 달콤함을 오래 즐기고 싶다면, 꿀을 ‘살아 있는 식품’처럼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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