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무역·산업·에너지·안보·군사 전 부문을 동시에 아우르는 대규모 협상 패키지를 마무리하고, 이를 공식 문서 형태로 명문화했다.
자동차 관세 인하,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한국 지위 보장,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절차 지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한 핵추진잠수함(핵잠) 사업 승인까지 포함되며 이번 합의는 “한미동맹의 구조적 대개편”으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팩트시트 발표 직후 직접 브리핑에 나서 “한미 무역·통상 및 안보 협의라는 두 개의 초대형 과제가 모두 정리됐다”며 “한국 경제와 안보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역사적 분기점”이라고 강조했다.
▲ 무역 분야: 車관세 25%→15%… 한국산 수출 품목 전반 부담 완화
이번 패키지에서 가장 주목받은 경제 조치는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는 결정이다. 팩트시트에는 “232조 관세를 15%로 낮춘다”는 표현이 직접 명기됐다.
시행 시점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MOU 이행 기금 조성 법안이 발의되면 그 달의 1일로 소급 적용하는 쪽으로 협의 중”이라고 밝혀, 이달 발의 시 11월 1일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핵심 수출 축으로, 관세 10%포인트 인하는 완성차 기업뿐 아니라 부품업계에도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가격경쟁력 회복이 아니라 구조적 회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건축·인테리어 자재 등 목재류 품목도 동일하게 15% 관세로 조정되며, 건설·가구업계 역시 원가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산업 협력: 반도체 ‘대만 수준 조건’ 명문화… 사실상 최혜국 대우
반도체 협력 항목은 단순한 관세 조정이 아니라 공급망·투자·정보 공유 등 전략 분야에서 한국의 대우 수준을 보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국은 문서에 “한국 이상 규모의 반도체 교역 국가와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적용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사실상 대만을 겨냥한 문장으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대만과 조건을 맞추는 수준의 최혜국 대우”라고 설명했다.
이 조치는 소부장 규제, 보조금, 공급망 안정화 협정, 미국 내 생산설비 투자 지원 등에서 한국 기업이 경쟁국보다 불리해지는 상황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의약품 관세도 15%를 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고, 복제 의약품과 미국 내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에 대해서는 상호 관세 15%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대미 투자: MASGA 1500억 달러+2000억 달러… 연 200억 달러 상한 ‘안전판’ 확보
미국의 대규모 관세 인하 조치에 따른 반대급부로, 한국은 기존에 합의한 조선 분야 투자 1,500억 달러 전략투자 2,000억 달러 등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재확인했다.
이번 협정의 핵심 중 하나는 한국 측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투자집행 상한 설정이다. 미국은 MOU에 따른 투자금 집행을 연간 200억 달러를 넘지 않는 범위로 제한하는 데 동의했다.
이는 단기간에 대규모 외화가 빠져나가 한국 외환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또한 조달시점 변경 요청권까지 확보해 장기적으로 투자 일정을 조정할 수 있게 됐다.
▲ 안보협력: “핵잠, 한국 건조 승인”… 美, 연료·요건 협력
이번 패키지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한 합의는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국내 건조를 미국이 공식 승인한 것이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며,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한 요건 진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고 적시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애초에 안건으로 올라온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핵잠은 고농축우라늄(HEU) 연료 공급, 설계 지원, 핵안전·방호 기준, 엔진·기술 이전 등 복잡한 문제를 동반하는 무기체계로, 미국이 “한국 건조”를 명시적으로 승인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핵잠용 연료(통상 HEU 90% 이상)의 직접 제공은 문서에 없으나, “연료 조달 방안 협력”이란 문구가 들어감으로써 저농축 핵연료(LEU) 전환, 한국형 연료 개발, 제3국 조달, 미국의 간접 지원 등 다양한 경로가 향후 협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게 됐다.
해군 관계자는 “핵잠 건조 승인 자체가 이미 엄청난 변화이며, 연료 조달 문구는 사실상 동맹급 핵협력의 문을 연 것과 같다”고 말했다.
▲원자력협정 개정: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절차 한국에 유리하게
미국은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절차를 지지한다”고 합의했다.
이는 향후 원자력협정 개정의 방향이 한국의 권한 확대 쪽으로 흐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 분야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핵연료 자립, 원전 수출 경쟁력, 핵비확산 체제 내에서의 한국 위상까지 연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 국방비·무기 구매: GDP 3.5% 국방비 확대, 美 장비 250억 달러 구매
한국은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3.5%로 증액하기로 했다. 이는 국군 창설 이래 최고 수준으로, 핵·미사일 대응, 차세대 방어체계 구축, 군 구조 현대화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또한 미국 무기 250억 달러 도입 계획이 확정됐다. 패트리어트·지상 기반 요격체계·해상 대잠자산 등이 우선 도입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 한미는 주한미군의 지속 주둔을 재확인하고, 확장억제 제공을 위한 핵협의그룹(NCG)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은 법적 요건에 따라 주한미군에 330억 달러 규모의 포괄 지원을 제공한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도 계속 추진하며, NCG·억제태세회의(DSC) 등 협의체를 통한 운용·정보 공유 체계가 한층 정교해질 전망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직접 언급되지 않았으나,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 위협에 미국의 억제태세를 강화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 여지를 남겼다.
양 정상은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2006년 한미 공동성명의 “전략적 유연성 필요성 인정” 문구를 재확인했다.
이는 한미동맹이 단순 ‘한반도 방어’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체를 포괄하는 확장형 지역동맹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대북정책: 싱가포르 합의 이행·WMD 폐기 촉구… “조건 있는 대화”
북한 문제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기존 목표를 재확인하고,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은 북한에 의미 있는 대화 복귀, WMD·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포기, 국제적 의무 준수를 촉구했다.
특히 이번 문서에는 대북 구체 제재나 군사조치 언급은 없으며, “조건 있는 대화와 억제 강화 병행”이라는 방향이 유지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를 “한미동맹의 산업·에너지·군사 구조를 향후 10~15년 단위로 재재편한 합의” 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핵잠 한국 건조 승인과 우라늄 농축·재처리 절차 지지는 안보·에너지 주권을 강화하는 조치로, 자동차 관세 인하와 반도체 대우 개선은 산업 경쟁력 회복에 직접적 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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