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한국화장품 그룹이 3세 경영 체제로 넘어가며 분기점을 맞고 있다.
그러나 사돈 관계였던 두 창업주가 공동 설립한 독특한 오너 구조와 복잡하게 얽힌 지분 관계, 그리고 폐쇄적 거버넌스가 여전히 정비되지 않은 채 유지되면서 승계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14일 업계 및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화장품 지분 현황 역시 두 가족 간 균형이 미묘하게 맞서 있는 구조로 드러나면서 잠재적 갈등 요인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라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화장품은 1962년 임광정 명예회장과 김남용 명예회장이 공동 창업하며 출발한 1세대 화장품 기업이다.
두 가문은 혼인 관계로 연결돼 있었고, 창업자의 자녀인 임충헌 회장과 김옥자 씨가 부부가 되면서 회사 운영 역시 자연스럽게 두 집안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1978년 상장을 거쳐 2010년 제조·판매 부문을 분할하면서 한국화장품제조와 한국화장품의 이원화된 그룹 구조가 형성됐으며, 이러한 두 가족 중심 체제는 2세대 후반까지 유지됐다.
현재 경영의 무게 중심은 이미 3세에게 넘어가 있다.
임충헌 회장과 김숙자 회장은 고령으로 경영 전면에서 사실상 물러난 상태이고, 그룹의 실질 운영은 이용준 부회장과 임진서 부사장이 맡고 있다.
이용준 부회장은 한국화장품제조와 한국화장품, 더샘인터내셔널 대표이사를 모두 겸직하고 있으며, 임진서 부사장도 한국화장품제조 부사장과 더샘인터내셔널 대표로 활동하며 핵심 계열사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 경영권이 3세로 이동했음에도 정작 이들의 직접 지분은 분산돼 있고, 핵심 지분이 여전히 2세대에게 집중돼 있어 승계 체계는 완전히 정비되지 못한 상태다.
전자공시와 주요 금융정보 서비스에 따르면 한국화장품제조의 최대주주는 임충헌 회장으로 11.54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김숙자 회장이 11.21퍼센트로 뒤를 잇는다.
이어 이용준 부회장 10.99퍼센트, 임진서 부사장 5.63퍼센트, 김옥자 씨가 2.9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12인 지분을 모두 합하면 45.03퍼센트 수준이지만, 이를 가족별로 나누면 김 회장 일가가 27.52퍼센트로 임 회장 일가의 17.51퍼센트를 앞서는 구조다.
실질적 지분 우위는 김 회장 측에 있지만, 두 집안 간 지분 차이가 압도적으로 벌어져 있는 수준은 아니어서 승계 과정에서 어떤 방향으로 지분 이동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경영권 구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판매 법인인 한국화장품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이 법인의 최대주주는 한국화장품제조(지분 20퍼센트)이며 김숙자 회장이 11.54퍼센트, 임충헌 회장이 9.45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어 가족별 지배력의 축이 제조 법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계열사인 더샘인터내셔널과 힐리브 등은 대부분 한국화장품이 지분을 갖고 있고, 해당 계열사 대표 역시 이용준 부회장이 맡고 있어 실질 경영 축은 김 회장 측 3세에게 더 기울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직접 지분보다는 계열사 구조와 직책을 통한 영향력에 가까운 형태여서 향후 주식 승계 과정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외부에서 지적되는 더 큰 문제는 이사회와 내부통제 구조다.
한국화장품제조와 한국화장품 이사회는 모두 사내이사 두 명과 사외이사 한 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감사위원회는 따로 설치돼 있지 않다.
감사 1인이 재무·경영조직의 보조를 받아 감사 기능을 수행하는 구조로, 사실상 오너 일가 중심의 운영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전문경영인이 없는 구조에서 세대교체 또는 지분 이동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이를 제도적으로 완충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그동안의 경영 성과에서도 지배구조 리스크는 일정 부분 반영돼 왔다.
한국화장품은 글로벌 K뷰티 열풍이 확대된 2021년 이후 실적이 회복되는 흐름을 보였지만, 그 이전까지는 주요 브랜드가 소비 트렌드 변화와 경쟁 심화에 대응하지 못하며 장기간 부진한 시기를 겪었다.
브랜드 개발 속도가 더뎠던 배경에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와 경영 판단의 지연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결국 한국화장품 그룹의 과제는 명확하다.
지분의 투명한 이동과 승계의 방향성 확립, 실질적인 이사회·감사 기능 강화, 전문경영인 활용 확대 등 지배구조 혁신이 없다면 두 가족 체제가 가진 태생적 리스크는 계속 남게 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국화장품이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두 가족 중심의 역사적 구조가 더 이상 발목을 잡지 않도록 명확한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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