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마르셸드 전 유엔사무총장이 남긴 일기…신간 '이정표'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다그 함마르셸드(1905~1961)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은 1961년 9월 어느 날 DC-6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내전 탓에 아비규환 양상으로 치닫던 콩고분쟁을 해결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비행기는 잠비아 은돌라 공항 인근에서 돌연 추락했다. 유엔은 당시 세 차례에 걸쳐 조사를 벌였지만, 추락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노벨위원회는 평화를 위해 헌신한 그의 업적을 기려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함마르셸드를 선정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는 평화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깬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그의 사망 후 뉴욕 자택에서 원고가 발견됐다. 1925년부터 썼던 일기와 시, 격언, 기도문 형태로 이뤄진 독특한 형식의 에세이였다. 타자기로 작성한 문서를 모은 것으로 낱장씩 바인더에 끼워져 있었다. 문서 앞장에는 '이정표'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함마르셸드의 일기를 토대로 한 책 '이정표'(복 있는 사람)가 국내에 출간됐다. 신앙과 자기 내면의 고백, 삶에 대한 태도, 국제 문제에 대한 생각 등을 엮은 에세이다. 격언이나 금언, 잠언 같은 아포리즘적 글쓰기와 감정을 표현한 서정시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저자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도달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큰일만을 추구하진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야말로 큰일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위대한 일'은 '작은 일'을 너무 쉽게 흐려 놓는다. 그러한 삶 속에 함께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겸손과 따뜻함을 갖추지 않는다면 다수를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책에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외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고독감, 소명으로 여긴 삶의 태도, 죽음을 예감한 듯한 통찰과 더불어 존재, 자유, 소명, 길, 책임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겼다. 30대 중반 무렵, 그는 이런 글을 썼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손에 넣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그것을 소유하려 들지 말라. 이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삶의 진실'이다."
손화수 옮김.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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