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계엄 당시 장관…이후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등 돌려
(자카르타=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1965∼1986년 재임) 독재 정권 종식에 역할을 한 후안 폰세 엔릴레 전 국방부 장관이 101세로 별세했다.
14일(현지시간) AP 통신 등에 따르면 엔릴레 전 장관의 딸은 전날 "아버지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성명에서 "엔릴레 전 장관은 50년 넘게 필리핀 국민을 위해 헌신했고 국가가 도전적이고 결정적인 순간들을 헤쳐 나갈 수 있게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 변호사였던 엔릴레 전 장관은 50년 넘게 관료로 일해 자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직한 공직자로 꼽힌다.
그는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1965년 취임한 이후 법무부 장관, 관세청장을 비롯해 3선 상원의원을 지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상원의장을 맡았다.
특히 1972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이 때문에 반정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시행한 계엄령을 설계한 인물로 불렸다.
이후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그는 1986년 군인 출신인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과 함께 21년에 걸친 마르코스 전 대통령 독재에 마침표를 찍고 코라손 아키노 여사를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아키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군사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2차례 구금되기도 했다.
엔릴레 전 장관은 2014년 정부 지원 우선개발보조금 유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0여년 만인 지난달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2년에는 98세 나이에도 마르코스 현 대통령의 법률 고문으로 활동했다.
한편, 계엄령 당시 투옥된 피해자들 모임 대표인 보니파시오 일라간는 성명에서 "애도할 눈물조차 없다"며 "그는 애국자나 정치가가 아닌 폭정과 탄압의 설계자이자 수호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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