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옥탑 주거취약계층 지원법 통과의 의미와 한국 주거정책의 새로운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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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옥탑 주거취약계층 지원법 통과의 의미와 한국 주거정책의 새로운 전환점

월간기후변화 2025-11-14 09:43:00 신고

▲ 허영의원    

 

허영의원의 주도로 국회에서 13일 통과시킨 ‘지하·옥탑 주거취약계층 지원법(주거기본법 개정안)’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보이지 않는 국민’으로 남아 있던 지하·반지하·옥탑 거주민을 국가의 공식적 정책 대상 안으로 끌어올린 전환점이다.

 

2022년 폭우 사망사고에서 드러났듯, 최저·최악의 주거환경이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붕괴되는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그동안 지하·옥탑 거주자는 법령상 실태조사 대상조차 아니었다.

 

즉, 위험은 존재했지만 국가는 그 위험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았고, 파악하지 않은 위험은 곧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이번 개정안은 이 구조적 방치를 뒤집는 첫 입법이다.

 

특히 개정안이 주거실태조사 대상을 ‘지하와 옥탑 등 열악한 시설’로 확장한 것은 정책의 시작점인 ‘문제의 가시화’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가 정책은 숫자와 데이터로 움직인다.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이제 지하·옥탑에 사는 수십만 가구의 실제 규모, 위험요인, 지역별 분포, 필요한 지원의 형태와 규모가 정식 공공데이터로 수집되기 시작한다. 이는 앞으로 주거복지정책의 재편 과정에서 ‘정확한 기초자료’라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국가가 열악한 주거시설을 ‘머물게 해서는 안 될 공간’으로 분명히 규정하고, 주거 이전 비용을 공적 책임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지하·반지하·옥탑의 문제는 재난 발생 시 일시지원이나 민간 자선에 의존하며 반복적으로 덮여왔다. 하지만 이번 법안은 ‘안전한 주거로의 이동’ 자체를 국가의 의무로 명문화했다.

 

특히 저소득층의 이주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반드시 지원하도록 한 조항은 실효성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다.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법적 의무이기 때문에, 예산 편성·지방계획 수립·이행 점검 등 실제 행정 체계 속에서 강제력을 갖게 된다. 이는 기후위기 시대의 최소 주거 안전망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첫 단계다.

 

세 번째로 이번 법 통과는 향후 주거정책의 기준을 ‘최소한의 안전’에서 ‘기본권 보장’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주거정책의 근본 문제는 ‘수요자 중심 정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주거취약계층은 생계비와 건강 문제, 고령, 장애, 불안정 노동 등 복합위험을 안고 있지만, 실제 정책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나 전세·월세 지원 등 일반적 틀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는 주거취약계층의 문제는 단순한 ‘주거빈곤’이 아니라 ‘생명보호’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폭염은 옥탑에서, 폭우는 반지하에서, 화재는 지하방에서 가장 먼저 사람을 위협한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현실을 정책적으로 인정하고, 위험 구조에 놓인 계층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향후 전망을 보면, 첫째 국가 차원의 정밀 실태조사와 주거취약지도의 구축이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는 지자체별로 산발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앞으로는 전국 단위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지역별 맞춤형 이주정책과 주거복지 계획이 가능해진다.

 

둘째, 이주 비용 지원이 의무화되면서 지하·옥탑의 단계적 해소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지하·반지하 인구 비율을 일정 시점까지 ‘제로화’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확장될 수도 있다.

 

셋째, 공공임대주택·매입임대·전세임대 등 기존 주거복지 프로그램이 취약계층 중심으로 조정될 것이다. 특히 긴급 이주를 위한 ‘즉시 입주형 공공임대’ 확대 논의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넷째, 지자체별로 이주 지원금 편차를 해소하기 위한 국비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수도권과 지방의 재정 여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재정·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결국 이번 법 통과의 본질은 ‘주거 취약’이라는 오래된 구조적 문제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선언이다.

 

주거는 더 이상 시장에서 개인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선택이 아니라, 시민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안전한 공간권’이라는 명제가 법률로 확인된 셈이다. 지하방에서 고립되고, 옥탑에서 열사병을 견디고, 좁은 반지하에서 생명을 잃는 비극은 사회가 감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번 개정안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문을 연 것이며, 그 문을 열고 나아가는 후속 정책과 실행력은 이제 정부와 국회, 지자체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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