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정부가 2018년 7억4230만t 대비 53~61%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2035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및 제4차 국가 배출권 계획기간(2026~2030년) 할당을 확정하면서 전력요금 상승과 배출권 비용 급증이 예고돼 산업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감축안을 두고 철강·석유화학 업계에서는 “현장 현실을 외면한 과도한 목표”라고 비판하고 있다.
14일 철강업계에서는 정부의 2035년 NDC 감축안이 업계 현실과 괴리를 보이며 산업 전반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2035년 NDC 감축안은 산업 현실과 맞지 않는 목표다. 철강업계의 핵심 감축 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은 상용화가 2037년쯤으로 예상되는데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목표만 앞당기면 결국 인위적 감산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그런 조치가 현실화되면 가격 경쟁력 하락과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철강은 조선·자동차·방산으로 이어지는 연관효과가 큰 산업이라 감산 충격이 전방위로 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업계가 14개 경제단체와 함께 성명을 낸 것이며 현재 통상과 공급망 압박까지 겹쳐 올해만큼 어려운 적이 없는데 정부가 현장의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정부의 2035년 NDC 상향 결정에 대해 업계 현실을 무시한 급진적 목표라는 비판이 거세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앞서 산업부에 제출한 최대 감축 가능치가 48%였다. 이미 적자와 공급과잉으로 어려운 석유화학 업종에 정부의 감축안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지금도 원가경쟁력에서 중국과의 격차를 따라가기 힘든데 추가 탄소감축 설비투자까지 요구되면 산업 전체의 비용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의 대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설정한 감축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주요국에서는 탄소중립 완급을 조절하며 속도를 조정하는데 한국만 급격하게 목표치를 높이며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환경과 산업의 균형을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이번에는 그 균형이 무너졌다”고 꼬집었다.
앞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10일 의결한 안은 1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쳤고 추후 유엔에 제출될 예정이다. 한국은 지난 6년간 9090만t을 감축했지만 최소안(53%)만 적용해도 향후 10년간 3억250만t을 추가로 줄여야 한다. 이는 최근 6년 감축량의 3.3배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탈탄소 전환 가속과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지만 구체적 이행 수단은 전력 부문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개 시점에 맞춰 추가 제시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배출권 할당계획에 따르면 4차 배출권 계획기간(2026~2030년) 총량은 25억4000만t으로 3기(30억3000만t) 대비 약 16.2% 줄었고 발전 부문 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은 현행 10%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된다.
철강·석유화학·시멘트·정유·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수출 비중이 큰 업종은 100% 무상할당을 유지하지만 시장에 풀리는 총량이 줄어 부족분을 비싼 가격에 사야 하는 부담은 여전하다. 정부는 직선형 경로 채택과 함께 3기 미소진 물량 약 1억4000만t을 이월 사용하도록 했으나 배출권 가격 상승과 결합될 경우 비용 충격을 상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사들의 비용 증가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압박 역시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5대 발전사가 2026~2030년 배출권 구매에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약 14조원으로 추산된다. 산업계는 지난해 발전사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규모에 해당하는 수준이라 전력 생산원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산업계는 최근 3년 반 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미 70% 가까이 오른 상황에서 추가 인상은 제조 경쟁력 약화와 고용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LNG 확대와 설비 효율 개선을 통해 비용을 흡수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산업계는 회의적이다.
지난 10일 대한상공회의소·한국철강협회·한국화학산업협회 등 경제단체 14곳은 공동 입장문을 통해 “탄소 감축 기술과 인프라가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표만 높아지면 기업의 부담이 급증한다”며 규제보다 인센티브 중심의 전환을 주문했다.
대한상의와 업종별 협회에 따르면 2026~2030년 기업들의 추가 배출권 구매 비용을 5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예측 가능한 투자환경, 무탄소 에너지 인프라 선제 확충, 송배전망·저장설비 확대, 전기요금 인상 폭 관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후속 조치로 태양광·풍력·전력망·ESS·전기차·히트펌프·그린철강·그린수소 등을 묶은 ‘K-GX(한국형 그린산업 전환) 전략’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고 기후 감시·예측 체계를 고도화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부문별 세부 이행계획은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하되 구조조정 등으로 발생하는 ‘자연 감소분’은 목표 하한(53%) 조정에 반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이는 산업계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어, 목표·수단·재원에 대한 일관된 신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