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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 LG생활건강(051900), 11번가 등 주요 유통·플랫폼·소비재 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희망퇴직을 시행하거나 조직 재편에 나섰다. 롯데멤버스는 근속 5년 이상, 1982년 이전 출생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공지했고, 롯데칠성(005300)음료도 1980년 이전 출생자 중 근속 10년 이상 직원을 대상에 포함시켰다. LG생활건강(051900)은 면세점·백화점 판촉직을 중심으로, 코리아세븐은 만 40세 이상 직원 등을 대상으로 각각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11번가는 3년째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근본적인 배경은 실적 부진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849억원으로 전년대비 12.2%, 순이익은 600억원으로 64% 감소했다. 3분기 반등에도 상반기까지는 하락세가 뚜렷했다. LG생활건강은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 5800억원, 영업이익 46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7.8%, 56.5% 줄었다. 코리아세븐도 상반기 매출 2조 3866억원, 영업손실 427억원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고정비 절감을 통한 생존 전략이 우선시되는 분위기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희망퇴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예전엔 실적 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AI 기반 경영 전환을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여겨진다. 기업들은 “젊은 조직으로 구성”, “기민한 실행력 확보”라는 식의 메시지를 앞세우며 희망퇴직을 언급한다. 실제로 롯데멤버스, 롯데칠성음료, LG생활건강 등은 AI 도입, 온라인 플랫폼 대응, 미래형 성장 조직 전환 등을 그 배경으로 제시했다. 더 이상 감추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내세우는 경영 전략이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유통업계에서 AI는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경영 설계의 전제로 자리 잡고 있다. 자동 발주, 수요 예측, 타깃 마케팅, 고객 상담 등 핵심 기능이 빠르게 자동화되면서 조직 재배치와 감축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AI에 맞춘 경영 재편 과정에서 사람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반복 업무는 물론 일정 수준의 판단이 요구되는 중간관리 영역까지 감원 대상에 포함되는 추세다. 연공 서열 중심의 나이가 많은 직원이 많은 ‘무거운 조직’은 더이상 자랑거리가 아닌, 낡은 구조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정년 연장 논의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인건비 부담이 큰 유통업계에 추가 압박으로 작용 중이다. 최근 대기업·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년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민간 기업들이 ‘선제적 정리’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공서열 구조가 강화되기 전에 고비용 인력 구조를 먼저 손보려는 의도다. 지금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친다는 판단이 기업 내부에 퍼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축소 지향 경영’이 유통업계의 뉴노멀(새 표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희망퇴직은 단기 감원을 넘어, 장기적인 체질 변화로 이어지는 구조 전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이 같은 기조가 더욱 보편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AI 기술과 내수 침체가 맞물리며 희망퇴직이 하나의 경영 표준처럼 굳어지고 있다”며 “‘축소 지향 경영’을 경쟁력처럼 내세우는 분위기가 고착화하면 채용 시장은 더 위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AI로 신규 채용도 줄어들면 청년 일자리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슬림화가 뉴노멀이 된 만큼, 여기에 따른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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