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가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항로 위에 자신의 해양 네트워크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인도·미국·페루·베트남 등 전략 거점국가를 잇는 글로벌 조선 협력망을 통해, HD현대는 단순한 상선 중심의 조선기업을 넘어 특수선 분야의 전략적 공급자’로 도약하려는 도약을 시작했다.
▲기정학(Techno-geopolitics) 거점에 내린 HD현대 앵카
13일 HD현대 판교 글로벌R&D센터. 정기선 회장은 하딥 싱 푸리 인도 석유천연가스부 장관을 비롯한 인도 정부 대표단을 맞이했다. 이날 자리에는 △구란갈랄 다스 주한인도대사 △락쉬마난 해운수로부 차관보 △아룬 쿠마 싱 인도석유천연가스공사(ONGC) 회장 △마두 나이르 코친조선소 회장 등 인도 공기업 CEO들이 총출동했다.
인도 정부가 추진 중인 ‘마리타임 암릿 칼 비전 2047(Maritime Amrit Kaal Vision 2047)’의 핵심 파트너로 HD현대를 공식적으로 호명한 자리였다.
푸리 석유천연가스부 장관은 “HD현대는 인도의 해양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정기 교류를 통해 협력이 더욱 실질적으로 진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기선 회장은 “HD현대는 인도의 조선산업 발전을 돕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조선·해양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답했다.
인도 정부는 향후 20여 년간 약 240억 달러를 투입해 조선산업 자립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1500척 규모의 상선을 2500척으로 확대해 글로벌 5위권 조선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HD현대와 인도 최대 국영 조선소인 코친조선소(Cochin Shipyard Limited, CSL)는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협력 내용은 △설계 및 구매 지원 △생산성 향상 △인적 역량 강화 등으로, 최근에는 상륙함(LPD) 등 함정사업까지 확대됐다.
이번 협력은 단순한 수출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현지 생산 거점–기술 이전–지역 시장 주도’로 이어지는 현지화 전략(Localization Strategy)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HD현대는 인도 외에도 베트남·페루 등 신흥 해양국에서 국영조선소와 합작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페루 국영조선소 SIMA와는 잠수함 공동개발 논의가 진행 중이며, 베트남에서는 상선 및 해양플랜트 분야 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미 전략과의 정합성
HD현대의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 과 맞물려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해양안보·공급망·산업협력을 아우르며, 중국의 해양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다층적 전략이다.
HD현대는 이미 미국의 대표 조선방산업체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HII) 와 협력해 차세대 군수지원함, 해양보급함 개발 등 군함·조선 방산 분야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단순한 기술협업이 아니라, 미국·한국·인도·태평양 연합국 간 해양 보급망과 군수체계의 ‘민간 동맹’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 미국은 인도·태평양 해역에서 해양보급망 강화에 주력하고 있으며, HD현대는 이에 부합하는 “전략적 공급자(Strategic Supplier)”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HD현대의 전략은 명확해 보인다. 첫째, 상선 중심에서 함정·특수선 중심의 고부가 산업 구조로 전환 중이다. 인도 상륙함, 미국 군수지원함, 페루 잠수함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행보는 ‘글로벌 해양 방산 플레이어’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둘째, 현지 생산거점과 협업 생태계를 통한 공급망 내재화 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 외주형 수출이 아니라 각국의 조선·해양 산업 정책과 맞물려 성장하는 구조다. 셋째, 미국과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 하고 있다. 미국이 조선·해양 장비 분야에서도 ‘탈중국화’를 가속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이 그 공백을 메우는 형태다.
중장기적으로 HD현대는 인도태평양 전역에 ‘전략 교두보’를 확보해 시장 선점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와 페루처럼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는 작더라도, 지정학적·전략적 가치가 높은 지역 에 진입함으로써 글로벌 경쟁사보다 먼저 ‘해양 네트워크’를 완성하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HD현대의 이번 행보를 ‘산업과 외교의 교차점’으로 평가한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단순히 안보동맹을 넘어 ‘산업 연합체’로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HD현대의 다국적 협력은 한국이 그 산업축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전 해군 고위급 관계자는 “HD현대의 해외 협력 네트워크는 미국이 구상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산업 버전으로 볼 수 있다”며 “조선산업의 지리적 분산과 기술이전은 결국 해양 공급망 안정성 강화로 귀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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