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 사회 내부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올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2일 JTBC 보도에 따르면, 협회 고위 임원이 채용 권한을 이용해 면접 합격자를 상대로 성관계를 강요하고, 피해자가 거부하자 2차 가해까지 서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3년간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용기를 내 사법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한국농아인협회 이사 정희찬 씨 / 유튜브 'JTBC News'
사건은 지난 2021년 수도권에 위치한 한 수어통역센터장 채용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농아인 A씨는 해당 센터장직에 합격하였는데, 당시 면접 자리에는 한국농아인협회 이사인 정희찬 씨가 참석하였다. 정 이사는 중앙수어통역센터 본부장직을 겸하고 있어, 사실상 채용 과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였다.
A씨가 합격한 직후, 협회 사무총장인 조남제 씨는 A씨에게 부적절한 압박을 가하였다. 사무총장은 A씨를 따로 지목하여 불러낸 후, 정 이사가 미혼임을 언급하며 사귀어 볼 것을 노골적으로 종용하였다고 피해자는 진술하였다. 협회 내 최고위층이 채용 직후부터 특정 관계를 강요하는 상황이었다.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 이사 본인도 직접적인 접근을 이어갔다. 그는 A씨의 근무지를 자신의 사무실 근처로 변경하도록 조치하였고, 사적인 만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정 이사는 "우리 남녀 관계로 만나자", "미국에서는 성관계가 개방적이니 서로 즐기면 된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성관계를 강요하듯이 요구하였다고 A씨는 밝혔다.
한국농아인협회 이사 정희찬 씨 / 유튜브 'JTBC News'
정 이사의 요구에 A씨가 쉽게 응하지 않자, 상황은 급변했다는 게 피해자 주장이다. 정 이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A씨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피해자는 "농아인 사회가 매우 좁기 때문에 중앙회에 미운털이 박히면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렸다. 협회 고위 임원의 권력을 이용한 조직적인 괴롭힘과 소문 유포는 피해자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A씨는 2022년 5월경, 정 이사에 의해 여러 차례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정 이사에게 알렸다. 이에 정 이사는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A씨에게 "애기를 없애라"고 회유하였으며, 그 후 A씨를 호텔로 데려가면서 "너 임신 중이니깐 해도 되겠네"라는 성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이후 정 이사는 현금지급기에서 50만 원 가량의 현금을 인출하여 A씨에게 건네고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는 성폭력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고 관계를 끊으려는 일방적 행동으로 해석되었다. 본사가 확보한 정 이사가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채용 전에는 문제가 되니, 채용 후에 성관계한다"는 취지의 내용까지 담겨 있어, 정 이사가 자신의 채용 권한을 성적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계획적으로 이용했음을 시사한다.
유튜브 'JTBC News'
성폭력 피해를 겪은 지 1년 후, A씨는 협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 센터장 채용에 응하라는 일방적인 연락을 받았다. 협회는 A씨가 이를 거부할 경우 해임하겠다는 압박을 가하였다. 결국 A씨는 어쩔 수 없이 지역을 옮겨 근무해야 했으나, 1년 뒤 해당 센터장 재임용 심사에서는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피해자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암흑 속에 혼자 걸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협회 고위 임원의 권력 남용과 그에 따른 성폭력 및 2차 가해로 인해 피해자는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완전히 고립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후, A씨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경찰청에 정 이사를 성폭행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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