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문화를 바꾼 도시가 있다. 수원시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공공화장실은 지저분하다는 통념을 깨고 화장실문화를 바꾸고 꽃피운 발상지다. 수원시 이목동에 화장실 박물관 ‘해우재(Mr. Toilet House·관장 이원형)’가 있다. ‘근심을 해결하는 집’ 해우재는 똥박물관을 비롯해 문화센터와 문화공원을 갖추고 있는 세계 최고 최대의 체험학습 공간으로 국내외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 화장실문화를 선도하는 해우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 개똥이에서 ‘미스터 토일렛’으로
문화센터에서 해우교를 건너 황금똥교를 지나면 보이는 해우재 앞 벤치에 점잖은 신사가 앉아 있다. 수원 사람 심재덕(1939~2009)의 동상이다. 뒷간에서 출생해 유년 시절 ‘개똥이’로 불렸던 해우재 설립자 심재덕의 생애가 궁금하다. “설립자 심재덕 의원님은 특별한 태생 장소 때문인지 화장실에 대한 애착이 유별났다고 해요.” 해우재에서 교육과 홍보를 담당하는 이정아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수원문화원장을 지내며 화성행궁 복원운동을 주도하던 심재덕은 1995년 민선 1기 수원시장에 당선돼 공공화장실에 주목합니다. 모두가 만류한 ‘2002 한일 월드컵 수원 유치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화장실을 주목하게 됐다고 해요.” 이때부터 심재덕은 깨끗하고 이용하기 편리한 화장실을 만들자는 ‘화장실 문화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광교산 길목에 있는 ‘반딧불이화장실’은 심재덕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수원시 제1호 공공화장실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과 광장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 깨끗하고 산뜻한 화장실이 들어섰다. 공공화장실 건립에 많은 돈을 쏟아붓자 비난하는 여론도 일어났지만 심재덕은 이에 굴하지 않고 뚝심 좋게 밀어붙였다. 공공화장실의 관리에 정성을 쏟아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니 시민들의 태도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 해우재는 ‘아름다운 화장실 혁명’의 선구자 심재덕의 집
아름답고 깨끗한 화장실은 수원시민의 긍지이자 자랑이 됐다. ‘아름다운 화장실 혁명’의 선구자 심재덕은 운동의 범위를 넓혔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거의 다루지 않던 화장실 문제를 공론화하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며 민간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창립합니다.” 심재덕의 활동을 주목한 외국 인사들은 ‘미스터 토일렛’이란 애칭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한다. 심재덕은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을 기념하고자 30여년간 살던 집을 허물고 변기 모양의 집을 짓고 그 이름을 ‘해우재’라 했다.
2007년 11월11일 완공된 해우재는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화장실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시장님이 돌아가신 후 유족들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2009년 7월 수원시에 기증했고 수원시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리모델링을 거쳐 ‘수원시 화장실문화 전시관 해우재’로 재탄생시켜 2010년 10월부터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설립부터 이제까지 심재덕 시장의 뜻을 계승해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원형 관장의 말이다.
해우재 상설전시실은 속이 알찬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공공시설로 지은 건축물로 여겼던 해우재가 설립자의 집을 개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랍니다.” 설립자가 가족들과 한동안 살았던 집의 거실 한가운데 화장실을 배치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반 박물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재미난 공간 배치와 충실한 내용이 돋보인다. 한중일 세 나라 화장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역사를 더듬고 화장실에 관련된 과학을 배우는 시간이 유익하다. 사진과 설명으로 화장실문화를 바꾼 수원시 화장실 문화운동의 전개 과정을 찬찬히 살펴본다.
■ 황금똥은행
2025 기획전시 ‘황금똥은행전’과 해우재 기획전시 ‘현재, 화장실, 미래전’은 12월 말까지 열린다. 전시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단어가 ‘황금똥’이다. “지난 어린이날 해우재 ‘황금똥은행’에서 발행한 어린이 통장입니다.” 통장을 펼쳐보니 “미래를 함께하는 건강한 은행” ‘황금똥은행’이라 쓰여 있다. 통장에 아이의 성명과 자신의 키, 몸무게, 똥 색깔을 써넣도록 빈칸을 두고 ‘브리스톨 대변표’를 실어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똥을 관찰하도록 유도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제1형 견과류처럼 분리된 단단한 덩어리의 형태부터 제7형 단단한 조각이 없는 완전한 액체 상태로 구분해 자신의 똥을 살필 수 있는 기준이 재미있다.
“똥이 치료제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인체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90% 이상 장내에 존재하고 질병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요. 똥에서 1천80종의 미생물이 검출됩니다. 대변 이식술은 장내 미생물의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을 대상으로 건강한 사람의 똥에서 검출한 미생물을 직접적으로 이식하는 시술입니다.” 해우재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답게 들려주는 내용이 똥박사 수준이다. “지금 똥이 필요하신가요. 질병에 걸려 급히 건강한 똥의 이식이 필요한 경우 황금똥은행에서는 건강한 똥을 대출해 드립니다.” 어린이 통장은 황금똥을 누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재미있게 알려준다. 해우재에서는 해마다 ‘해우재 황금똥 그림잔치’를 열고 있다. 전시실에서 올해 ‘제13회’를 맞은 황금똥 그림잔치 수상작을 살펴보며 웃음 짓는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상상력이 빛나는 즐거운 공간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똥 체험관이다. 체험관을 둘러보는 유치원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신비로운 몸속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도 사람의 몸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정직한지를 깨닫게 된다. ‘황금똥 물렁똥’은 무엇을 먹으면 황금똥을 누고 무엇을 먹으면 물렁똥을 누는지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뿌글뿌글 뿡뿡 황금똥이 나와요!’는 변비로 고생하는 어른들이 부러워할 쾌변에 관한 이야기다. ‘유익한 똥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다.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똥 영상’을 관람하고 화장실 에티켓을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해우재 문화센터 1층 똥도서관에 들어서면 사방이 온통 제목에 똥이 들어간 책이 꽂혀 있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도 똥 이야기책은 좋아한다니 꼭 찾아봐야 할 소중한 공간이다.
■ 화장실 문화공원
전시실을 나와 공원을 산책하며 조형물을 살펴보는 시간도 즐겁다. 공원에는 온통 똥 누는 사람들이다. 신사 옆에 앉은 꼬마는 바나나 같은 황금똥을 누고 있다. 금색을 칠한 똥이 바나나 같다. “관람객들이 하도 많이 만져 닳았어요.” 공주도 똥을 누고 신사도 똥을 누고 있다. 똥 누는 사람들 속에 간밤에 오줌을 싼 벌로 키를 쓰고 한 손에는 바가지를 들고 서 있는 아이의 표정이 재미있다.
공원을 둘러보다 문득 우리 화장실 역사가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백제와 신라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변기의 이름이 ‘호자’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삼국 시대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알게 해주는 화장실 모형이 눈길을 끈다. 노둣돌은 신라 시대 귀족 여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우리 민족도 오래전부터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음을 알려준다. 왕궁리 화장실은 7세기(백제 무왕·600~641년) 무렵에 만들어진 최초의 공중화장실이다. 매화틀은 임금님용 이동식 화장실답게 장식이 고급스럽다.
서양의 화장실 문화도 재미있다. 고대 로마에서 사용한 수세식 변기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봐도 수준급이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걸상식 좌변기를 사용했습니다.” 양산과 굽이 높은 구두가 똥오줌을 피하기 위한 물건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서양 변기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면 화장실의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똥을 통해 건강한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특별한 박물관 해우재는 화장실문화를 바꾼 사람 심재덕의 생각을 배우는 즐거운 공간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